관중과 포숙아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3-03-08 09:12 조회수 : 69
관중과 포숙아
춘추전국 시대의 대국 제나라에서는 관중과 포숙아라는 두 사람이 왕을 모시고 있었다. 두 사람은 젊었을 때부터 둘도 없는 친구였다. 그들은 젊은 시절에 동업으로 장사를 했었다. 관중이 자신의 몫보다 더 많이 가져갔지만 포숙아는 그를 뭐라하지 않았다. 포숙아는 관중이 자신보다 가난하기에 더 가져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둘이 관직에 등용되었을 때 관중이 관직에서 여러 번 파면되었다. 그때에도 포숙아는 그를 무능하다고 욕하지 않고 오히려 관중의 복직을 위해서 노력했다. 그리고 전쟁 때마다 관중이 도망쳤을 때도 포숙아는 그를 비겁하다고 하지 않았다. 그에게 늙은 어머니가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훗날 춘추오패의 하나가 된 환공을 도와 천하를 움직이는 대정치가가 된 관중은 이렇게 말했다. “나를 낳아준 것은 부모지만, 나를 알아주고 키워준 것은 포숙아였다.”
친구에 대한 우정을 말할 때 가장 좋은 예로 많이 사용하는 내용이 ‘관중과 포숙아’ 이야기이다. 세상에 사이좋게 지내는 친구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세월과 세상은 친구관계를 가만히 두지 않고 이간질을 시킬 때도 많다. 세월 속에서 어느 친구는 잘되어 있고, 어느 친구는 잘 안된 경우가 바로 우리가 겪게 되는 유혹이다. 사람은 누구나 잘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노력 만큼의 결과를 얻지는 못한다. 그럴 때 발동되는 것이 질투라는 유혹이다.
그러나 진정한 친구라면 어떤 경우든지 유혹에 의해서 사이가 멀어지면 안된다. 설령 그대가 지금 관중 같은 입장이더라도 포숙아 같은 친구가 곁에 있다면 다행이다. 우리들의 우정도 친구를 알아줄 수 있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이 이렇게 후세까지 전해지게 된 것은 관중이 자신을 알아준 포숙아를 알아주기 위해 노력했고, 성공한 뒤에 친구의 우정에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뼈저리게 느끼는 게 하나있다. 사람이 성공을 하려면 반드시 사람들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특히 그중에서도 친구의 도움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진리중에 하나가 사람은 자기 그릇 크기만한 친구를 곁에 둔다는 것이다. 자신의 그릇이 작은데 큰 친구를 둘 수는 없다. 물론 친구가 이해심이 많다면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우정 그릇을 어떻게든 크게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그대 곁에 관중 같은 친구가, 포숙아 같은 친구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