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사람에게
왕궁에 ᅠ왕을 위해서 웃기는 일을 하는 광대가 있었다. 하루는 바보짓을 하면서 얼마나 웃겼던지 왕이 지팡이 하나를 선사하며 "이놈아. 네가 세상을 살다가 행여 너보다 더 멍청한 짓을 하는 바보를 만나거든 이 지팡이를 그에게 주어라."했다. 세월이 지나 왕이 죽을 때가 가까워지자, 주변 사람에게 긴 여행을 떠난다고 하면서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광대가 공연하는 것을 보고 싶어서 그를 불렀다. 이때 광대가 불쑥 왕에게 질문을 했다. "임금님, 어디로 긴 여행을 가신다는 겁니까?"라고 묻자, 왕은 "죽음을 통해서 아주 먼 곳으로 간다."라고 답했다.
다시 광대가 "임금께서 다른 나라를 행차하실 때는 신하와 많은 말들을 준비하셨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무엇을 준비하셨습니까?" 하고 묻자, 왕은 "다른 여행 때는 많은 것을 준비했지만 이번에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다."라고 했다. 그러자 광대는 수년 전에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지팡이를 내놓으면서 "임금님께서 이 지팡이의 주인이십니다. 그 먼 여행을 떠나시면서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하셨으니 이 지팡이를 받으십시오."라고 말했다. 우스갯소리지만 언젠가는 죽음을 통해서 영원한 길을 떠나야 하는 우리들에게 한 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이야기다.
오늘은 우리와 함께하셨던 유경촌 디모테오 주교님의 장례미사를 봉헌하는 날이다. 주교님이 되시기 전에는 바로 옆 본당에서 사목하셨고, 주교님이 되신 후에는 같은 지역 담당 주교이셨다. 학교에서 교장으로 있을 땐 이사장 주교님이기도 했다. 늘 청렴결백하게 사시려고 노력하신 착한 목자이셨다. 오늘 그토록 그리워하셨던 하느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사시기 위해서 무거운 주교관과 주교 지팡이를 영원히 내려놓으시는 날이다.
주교님의 장례미사를 앞두고 과연 나는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하면서 살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된다. 왕처럼 다른 나라 여행할 때는 만반의 준비를 하지만 천국 여행을 할 땐 아무 준비도 못 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지 않았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아직은 건강하고 때가 되지 않았다는 ᅠ이유가 마땅히 가야 할 먼 길에 대한 준비를 면제받지는 못한다. 현대인이 바쁘다는 핑계를 대면서 자신의 삶을 합리화하고 있다. 바빠서 성당을 못 나가고, 바빠서 이웃 사람을 돌보지 못하고, 바빠서 어르신께 효도를 못 하고, 바빠서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다고 말하곤 한다.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ᅠ죽음을 준비하지 않는 수많은 사람은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자기 삶을 돌아보아야 한다. 그러면 무엇이 더 중요한지가ᅠ확연해진다. 삶을ᅠ잠시 멈추어서 거실에 걸려 있는 먼지 묻은 십자가를 바라보고 말없이 아내의 손길을 쓰다듬어 보며 잠들어 있는 자녀 옆에서 두 손을 모으고 축복의 기도를 빌어 보아라. 그러면 여러분은 하느님 나라를 위한 준비를 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