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해소
초등학교 3학년에 어머니께서 15권으로 된 위인전을 사주셨다. 난 그 책을 여러 차례 읽어서 내용을 거의 외울 정도였다. 그리고 위인들의 어린 시절과 앞으로 나에게 펼쳐질 미래를 꿈꾸곤 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어디서든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묵묵하게 자기 할 일을 해내고 유연한 감정 조절로 꿋꿋이 이성을 지키는 사람,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살아가는 어른을 동경하며 내가 가진 감정을 호주머니에 차곡차곡 쌓으면서 살아왔다. 그땐 몰랐다. 감정을 표현하는 건 이성을 잃은 사람이나 하는 짓이라며 자만했던 어린 시절이 잘못된 것이고 그러면 가식적인 표정밖에 지을 줄 모르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말이다.
자기감정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학적으로 ‘감정 표현 불능증’이라고 한다. 이 용어는 그리스어로 ‘영혼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유교 사상이 바탕인 한국에서 자란 내 또래들은 어렸을 때부터 감정을 억제해야 성숙한 사람으로 대접을 받아서 감정 표현에 늘 서툴렀다. 솔직하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사회, 그래서 곪은 감정을 그대로 방치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이 많다. 내면에 쌓인 감정은 신체적 증상으로 드러난다. 스트레스성 두통이나 소화불량 그리고 흔히 화병이라고 하는 감정 조절 장애가 대표적이다. 정서적인 장애를 제때 해소하지 못하면 감정이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표출되어서, 인간관계나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기 마련이다. 그런데 자신의 삶은 왠지 희와 락은 없고 로와 애만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요즘 어떠냐고 물어보면 다들 괜찮다는 말로 얼버무리기 바쁘다. 나의 삶을 남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마음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자신의 감정을 꼭꼭 숨긴다고 없어지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감정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방법도 있다. 날씨에 비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그런 것조차 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모르는 이유는 알려고 하지 않고, 귀찮아서 표현하고 싶지 않아서다. 이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무심함이라고 말하고 싶다. 자신의 감정을 굳이 알려고, 그리고 표현하지 않고 대충 넘기려다 보면 고질병에 걸릴 수 있다.
울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 우는 것을 통해서 감정을 해소하는 사람이 제일 평온하다. 그래서 울고 싶을 때 편히 우는 어른이 되어라. 아닌 건 아니라며 표현하는 사람이 되어라. 마음의 쓰레기를 쌓고 방치하지 말자. 애꿎은데 화풀이를 그만하고 지혜롭게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자. 우아하게 화를 내고 자신의 감정을 표출한다고 나약한 인간이 되는 게 아니다. 인간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건 마땅한 권리이다. 감정을 슬기롭게 해소해서 마음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고, 그럴 때 평안함이 느낄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