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나라와 보물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보면 정말이지 멋있는 대사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우리말의 표현의 다양성에 대해서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작가들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부럽고 숙연해진다. 부모가 반대하는 혼인을 고집하는 딸이 엄마에게 대들며 말한다. “내 인생 내가 사는데, 엄마가 왜 반대해?”
그러자 옆에서 있던 아버지가 “부모의 인생 속에는 너희들 인생이 함께 있다”라고 말한다. 나는 그 대사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분명한 것은 모든 부모들은 자기 삶 속에서 절대적인 부분을 자식을 위해서 희생하면서 살아왔다.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은 절대적인 보물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부모이신 하느님을 생각하면서 성경을 읽을 때 말씀이 과거의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를 향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성경은 지나간 역사를 나열한 것으로 알아듣거나 문학 비평적이고 역사 비평적인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잘못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 말씀이 절대 쉽지 않기 때문에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농부, 상인, 어부의 비유를 통해서 사람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해 주셨다. 오늘 주제인 하느님 나라와 보물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다.
이스라엘은 불행히도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늘 전쟁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왔고,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식을 일찍부터 깨우쳤다. 전쟁이 잦은 관계로 집에 귀중품을 보관하지 않고 밭이나 들판에 보물을 숨기고 전쟁을 피해서 집을 떠나는 일이 잦았다. 다행히도 피난 간 사람이 돌아오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피난 간 사람이 죽었을 때 그 보물은 아무도 모르기에 그대로 땅에 묻혀있게 된다. 가난한 소작인이 농사를 위해서 밭을 갈다가 우연히 보물단지를 발견하게 되면,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팔아서 그 밭을 산다. 그래야 그 보물을 합법적으로 소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 나라도 농부처럼 최소한의 노력을 해야 얻을 수 있다. 하느님 나라를 얻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충실히 하는 사람은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의 가르침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속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얻을 수 있다. 하느님 나라는 회개와 믿음, 희망과 은총을 통해서 갈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 문호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개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하느님 나라는 형제적 사랑, 정의와 평화, 기쁨과 나눔이 있는 그곳에서 완성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