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30주년 피정을 준비하면서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5-06-29 20:00 조회수 : 66

30주년 피정을 준비하면서


오늘부터 다음 주 월요일까지 주문진에서 동창 신부들과 함께 서품 30주년 기념 피정을 한다. 각자의 삶이 바빠서 서품 후에 함께 하지 못했는데, 30주년을 계기로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그동안 삶에 대해서 나눔을 하는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나도 피정을 앞두고 사제로 살아왔던 30년을 며칠에 걸쳐서 돌아보았다. 적지 않은 시간을 불안과 두려움을 갖고 살았다. 혹시 병에 걸리지 않을까, 내가 하는 사목이 실패하지 않을까, 심지어는 신학생 시절로 돌아가서 시험에 낙방해서 유급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온갖 염려와 두려움에 발목을 잡혀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멈칫거리던 시절도 있었다. 돌아보면 사제의 삶은 걱정의 연속이었다. 지나친 걱정 때문에 사제 본연의 모습인 평화와 기쁨을 느끼는 시간이 적었다.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온갖 불안과 염려, 두려움의 종착지는 죽음이다. 사제는 부활이 있으니 죽음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말자고 강조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내 마음에 스며드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때마다 두려움 앞에서는 이성적이고 지성적인 판단이나 의지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마음은 먹지만 근본적인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번 피정에서는 훨씬 깊은 차원을 고민해 볼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하느님으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았고, 어떻게 유지하며 살아왔는가? 밥을 잘 챙겨 먹고, 잘 자고,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건강과 생명을 유지할 것이라는 기대를 버릴 것이다. 우리의 생명을 떠받치고 있는 힘의 근원은 나의 생각과는 달리 훨씬 더 깊고 크고 신비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생명은 나의 이성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이는 이성을 훌쩍 뛰어넘는 깨달음과 믿음이 필요하다. 여기서 믿음이란 이성에서 벗어나서 맹목적 신앙으로 내달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깊은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근본적인 결단이어야 한다. 겸손하게 내 자신을 내려놓고 하느님께 맡기는 고귀한 행동인 것이다. 죽음까지 내포한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할 때 비로소 온갖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세상의 삶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면 오랫동안 우리를 괴롭히던 고민의 뿌리가 뽑힐 것이고 그러면 줄기와 잔가지들은 저절로 말라 버릴 것이다. 이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고민은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뜻대로 잘 살 수 있을까만 남은 것이다. 이번 주에 맞이할 소중한 피정은 이런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성찰하는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나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사제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우리에게 용기를 주시고 따라오라 하신 손짓에 과감하게 응답하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신자들도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