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우리가 꿈꾸는 사회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5-06-23 19:38 조회수 : 73

우리가 꿈꾸는 사회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시간이 늦은 밤이라서 낮에 중문에 있는 둘레길을 잠시 걸었다. 날이 덥고 장마 시즌이라서 그런지 걷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 혼자서 한적하게 바닷가를 걷다가 문득 예전에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신자가 순례하던 중에 낯선 어떤 산골의 조그만 동네를 지나게 되었는데, 특이하게도 그 동네 한구석에 작은 물 탱크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옆에 안내문을 보면 그것은 단순한 물 탱크가 아니라 우유를 넣어 보관하는 냉장 탱크였는데, 그안에 담겨져 있는 우유는 동네 사람들이 기르는 젖소에서 짜 모은 것으로 지나가는 순례객 누구라도 원하면 마시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만약 우유 한 잔에 목을 축이고 배고픔을 극복한 경험이 있는 순례객이라면 그 동네사람들의 친절함에 좋은 인상을 가졌을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참으로 지혜롭고, 여유가 있는 마음씨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을이 좋아보이지만 우리의 현실에서는 전혀 반대의 경우가 많다. 자신의 것을 나누어주기 보다는 오히려 자기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 울타리를 치고 튼튼한 자물쇠를 채우고 그것도 부족해서 CCTV까지 설치하고 있다. 그래서 집들이 점점 더 요새화 되어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사람이 이웃을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람보다는 경계할 대상으로 여기고 심하면 배척하기도 한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제주도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은 띄엄띄엄 떨어져 보이지만 물 안을 들여다보면 하나의 땅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단지 낮은 지대는 물에 잠기고 높은 봉우리만이 물 밖으로 드러나서 고독한 섬으로 보일 뿐이다. 하지만 섬들도 본질은 하나인 것처럼 각자의 삶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사람들이 가진 바를 공동 재산으로 내놓고 각자 필요한 대로 나누어 쓰는 것이 예수님의 뜻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초대 교회 공동체의 나누는 삶은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빛나는 모범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서 많은 나라에서 재현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을 했지만 실패했다. 대부분의 경우에 양심과 금전으로 인해서 문제가 발생되었고,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영성적인 뒷받침이 없어서 실패했다. 하지만 신앙공동체는 그 꿈을 영원히 포기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교회에서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구성원들이 한데 어울려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일생을 수도원에서 밤낮으로 고행과 기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내주고 있는 수도자들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그리고 하루하루가 힘들지만 신앙인의 양심으로 참고 견디면서 지내고 있는 수많은 교우들, 사회의 소외 계층이 당하는 억울함을 자기의 것으로 여기면서 고통에 기꺼이 참여해서 함께 나누고 있는 신앙인들, 그외에도 선의를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무수한 사람들의 노력 덕분에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꺼지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죄인들이 그 덕분에 인간으로의 품위를 유지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여유롭게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은총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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