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남아메리카 최초의 미사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5-06-16 20:37 조회수 : 55

남아메리카 최초의 미사


사제로 오랫동안 살아왔지만 교회 역사의 상당부분을 아직도 모르고 있다. 그래서 궁금한 교회의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확실하게 드러난 역사도 있지만, 애매모호한 역사도 상당히 많이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특히 교회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서 전세계로 퍼져나가면서 겪었던 많은 일들과 과정이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보지만 속시원하게 해결해 줄만한 내용이 예상보다 적은 것이 현실이다. 특히 국민의 절대 다수가 신자인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선교가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나름 정성을 쏟았지만 무슨 이유에서 남아메리카 대륙보다 선교의 효율이 떨어졌을까를 궁금해 하던 차에 재미있는 기사 하나를 찾았다.


2019년 1월 6일, 전임 교황이셨던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산살바도르(엘살바도르의 수도) 대교구의 보좌 주교인 그레고리오 로사 차베스를 ‘스페인의 섬’으로 파견하셔서 당신을 대신해서 미사를 거행하게 하였다. 자그마한 섬에서 이루어진 미사에 어떤 이유에서 교황님이 직접 대교구에 지시를 해서 보좌주교를 파견해서 미사를 봉헌했는지 궁금했다. 그 내용을 확인을 해보았더니 충분히 이유가 있었다. 


1492년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내용을 스페인 정부에 보고하자 당시의 이사벨라 여왕은 교황과 상의해서, 앞으로 신대륙에 갈 때는 가톨릭 사제와 수도사들을 군인들과 함께 파견해서 선교를 하도록 배려했다. 콜럼버스는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여왕(1451-1504)에게 위임을 받은 17척의 배와 1,200명의 군인과 상인들을 이끌고 식민지에 영구적인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항해를 떠났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1506)가 두 번째 항해에서 발견한 카리브해의 이스파니올라섬(스페인어로 스페인의 섬이라는 뜻)에 유럽을 닮은 도시를 건설하고는 이름을 당시 스페인의 통치자인 여왕의 이름을 따서 ‘라 이사벨라’라 붙였다. 도시는 규모 면에서 2헥타르가 조금 넘는 땅에 약 200채의 집, 광장, 성당, 무기고와 콜럼버스를 위한 화려한 석조주택 등을 건축했다. 그 곳은 오늘날의 도미니카 공화국의 도시인 프에리토 플라나와 가까운 거리에 있다. 식민지 도시의 공식 설립을 기념하여 1494년 1월 6일에 신대륙에 건설된 라 이사벨라에서 미 대륙 최초의 가톨릭 미사와 축성식이 봉헌되었다.


이후로 남아메리카는 빠르게 식민지화가 되었고, 동시에 많은 수도원의 노력으로 토착민들이 가톨릭으로 개종되었다. 현재 남아메리카 대륙의 거의 모든 국가에서 가톨릭의 신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바로 1494년 1월 6일의 첫미사가 시점이 되었다. 그래서 그러한 역사적 사건을 중요하게 기념하게 위해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직접 미사를 봉헌할 수는 없었지만 대교구의 보좌주교를 파견해서 기념미사를 봉헌하게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