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개새끼를 낳을 리가 없다
내 글을 매일 읽고 있는 형제님께서 자신의 부끄러웠던 과거에 대해서 글을 보내왔다. 몇 번을 고민하다가 그분의 허락을 받아서 편지를 옮겨보려고 한다.
돌이켜 보면 어렸을 때부터 나는 크고 작은 사고를 참 많이도 쳤다. '사고'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일을 의미한다. 자연이 사고를 치면 지진이나 태풍, 홍수처럼 자연재해가 발생하고 사람이 사고를 치면 다른 사람이 상처받는 피해가 발생한다. 내 사고의 가장 큰 피해자는 부모였다. 어렸을 땐 기껏해야 학교나 다른 학부모에게 전화가 걸려 오는 게 다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응급실이나 경찰서에서도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알코올 중독이 가장 심했던 20대 중반에는 전화벨 소리만 들어도 엄마는 깜짝깜짝 놀랄 지경이 되었다. 특히 내가 집에 없거나 밤늦은 시간에 전화가 오면 엄마가 느끼는 공포는 극에 달했다고 한다.
날씨가 몹시 추운 어느 겨울의 새벽녘에 나는 술에 취해 또 사고를 쳤다. 수갑을 차고 경찰서에 앉아 있는데 경찰관이 보호자의 연락처를 물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엄마의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떠 보니 낯익은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아버지였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엄마는 괜찮은지 묻자,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네 엄마, 조금 전에 전화를 받고 쓰러졌다.”
경찰서에서 나오자, 아버지는 나를 동네 뒷산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우리는 깎아 세운 듯한 벼랑 앞에 나란히 섰다. 아버지가 말했다. “미안하지만, 할 수 있으면 여기서 뛰어내려 죽어 줘라.” 내가 망부석처럼 꼼짝하지 않고 서 있자 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무서우면 내가 따라가 줄게.” 그날 아버지의 말과 행동에서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그날 이후로도 노력은 했지만 몇 년간 술을 끊지 못했다. 경찰서에 전화를 받고 불려 다닌 것은 오롯이 아버지의 몫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는 이상하리만치 태연하셨다. 아버지는 혀가 꼬여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아들의 전화를 받았을 때도, 모두가 잠든 시간에 경찰서에 출석할 때도, 법정에 앉은 아들을 바라볼 때도 아버지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보였다.
술을 끊고 난 뒤에 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어떻게 늘 그렇게 태연할 수 있었어요?” 그러자 아버지가 말했다. “호랑이가 개 새끼를 낳았을 리 없기 때문이지.” 나는 피식 웃고 말았지만, 아버지의 그 말이 참 고맙게 느껴졌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뒤에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지금은 아버지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 그동안 나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변할 수 있었고, 아버지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도 자식에게 늘 태연한 눈빛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