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면서 배운다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5-05-20 21:10 조회수 : 37
가르치면서 배운다
“당신이 뭘 알아?” 라는 말을 들었다면 기분이 나쁘다. 이런 말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는 반증이다. 이러한 형태의 말은 아이들에게도 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무시받고 자란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 들고, 잠재적으로 갖고 있는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없다. 상대방을 무시하는 말과 표현은 다양하다. 상대방의 수준을 넘어서는 질문을 하면서 “이 정도는 당연히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는 식의 태도도 상대를 무시하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만약 초등학교 수학 시간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미적분이나 함수론을 가르친다면 어떨까? 이는 학생들을 무시하는 행위로 그에게는 선생님의 자격이 없다. 이처럼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는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반드시 필요하다.
오래 전부터 전해오는 말 중에 “옥은 다듬지 않으면 그릇이 될 수 없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세상의 이치를 알 수 없다. 이런 까닭에 옛 왕들은 나라를 세우고 어떻게 왕 노릇을 해야하는지를 백성으로부터 배우는 것을 우선으로 삼았다. 그리고 좋은 안주가 있어도 먹지 않으면 그 맛을 알 수 없고, 비록 지극한 도가 있어도 배우지 않으면 그 좋음을 알 수 없다. 사람은 배운 다음에야 부족함을 알고 가르쳐 본 다음에야 어려움을 알게 된다. 부족함을 안 다음에야 스스로 반성할 수 있고 어려워 본 다음에야 스스로 강해질 수 있다. 그래서 가르침과 배움은 서로 상호작용으로 진일보 시키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가르침의 절반은 배우는 것이라 했던 것이다. 공자께서도 같은 질문을 받더라도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답을 달리했다고 한다. 인(仁)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자신의 수레를 끌던 번지라는 제자에게는 “남을 아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번지는 가장 어린 제자였고 특히 궁금한 것이 있으면 늘 물어보았는데, 마음이 온순했다. 한편 자공이라는 제자가 같은 말을 물어보았을 때는 “기술자가 자기 일을 잘하려면 먼저 연장을 예리하게 손을 보아야 한다”라고 답했다. 자공은 이재에 밝았고 언변이 뛰어 났으며 토론하길 즐겼고 듣기보다는 말하기를 좋아했다. 공자는 어리고 천진난만한 번지에게는 남을 아낄 줄 아는 고운 마음으로써 인을 알려 준 반면, 뽐내기를 좋아했던 자공에게는 뽐내는 만큼 배우는 것도 좋아해야 한다는 것을 넌지시 타일러 준 것이다.
이러한 교육 방식은 성서 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수님도 하늘나라와 사랑에 관해서 물어오는 제자들에게 들려준 대답은 차이가 있었다. 어떤 제자에게는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또다른 제자에게는 간단 명료하게 설명해 주셨다. 아마도 각자 알아듣는 수준의 차이를 아셨기에 나름 맞춤식 교육을 하신 것이라 생각된다. 가르치는 것은 지식이 동반되어야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상대방의 수준에 맞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가르치기 전에 먼저 상대방을 알아야 하고 배워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