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존중하는 사회
사제라는 단 한 가지 이유로 신자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살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부담이 되기도 한다. 오늘날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킨 스토킹이나 가스라이팅, 그루밍 성범죄도 왜곡된 관심으로부터 비롯된다. 타인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중요하지만 지나치면 절대로 안 된다.
세상은 다양함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이 물에 들어가면 호흡곤란 때문에 죽지만, 반대로 물고기들은 물속에서 잘 산다.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도 원숭이는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쉽게 뛰어다닌다. 마치도 사람이 땅을 걷는 것처럼, 물고기가 물에서 헤엄을 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처럼 세상 만물은 저마다 각자의 방법으로 살아간다. 어느 것이 올바른 삶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서로 다양하게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처럼 다름을 받아들이고 다양성을 인정할 때 만물은 하나의 방식으로 살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그러나 다름과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 삶의 잣대로만 세상을 본다면 세상의 모든 것이 비정상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라틴어로 ‘악마’를 일컫는 단어는 ‘디아볼루스’인데 그 뜻의 근본은 ‘분열과 소란’이다. 동양철학에서 분열과 소란이 난무한 세상을 ‘번연효란’으로 표현했는데, 이는 ‘울타리처럼 어지럽게 뒤섞인 모양’이란 뜻이다. 분열과 소란을 해소하는 유일한 방법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주관이 절대적이라고 확신해서는 안된다. 내가 맞고 상대방은 틀렸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때, 내게 좋은 것이 상대방에게는 싫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될 때, 사람의 관계는 편해질 수 있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은 사람마다 전부 다르다. 그래서 다름을 인정하는 사람은 다양성을 통해서 일치될 준비가 된 사람이지만 다름을 거부하는 사람은 분열과 소란을 즐기거나 조장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우리는 타인들과 사이좋게 살기를 바라고 있다. 이를 위해서 어느 정도는 자기 생각과 가치관을 접고 희생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배려와 관심을 통해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다름을 인정하면 그동안 이해되지 않던 많은 것들이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세상엔 별의별 이상한 사람이 많은 게 아니라 이해받지 못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한다. 이상한 사람이 많으면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게 지내기가 힘들고, 반대로 이해하려는 사람이 많은 세상엔 사람들과의 관계가 나쁜 경우가 훨씬 적어진다. 너를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끔 강제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폭력이다. 각기 다른 너와 내가 모여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되는 사회는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