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당신은 행복한 사람입니까?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5-05-18 20:17 조회수 : 57

당신은 행복한 사람입니까?


체코 문학의 거장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자신이 사는 곳을 떠나고자 하는 자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힘들고 어려움을 느낄 때마다 삶의 무게를 훌훌 털어버리고 어디론가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마음을 갖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가족도 친구도 동료도 다 필요 없고 아무도 없는 장소나 때로는 무인도에서 혼자서 단 며칠 만이라도 살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보좌신부로 살던 언젠가 주임신부와 심한 견해차 때문에 속이 상해서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에 산에 오른 적이 있었다. 출발했을 때는 흐리기만 했었는데 등산 중간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만 내려가려고 발길을 돌렸지만 내려가는 길은 더 고역이었다. 길도 미끄럽고, 빗소리가 마치도 산짐승이 쫓아오는 것 같아서 뒤돌아볼 엄두도 내지 못하다가 저 멀리서 나와 같은 처지인 사람들을 만났을 때 형언할 수 없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살면서 사람이 그렇게 반가운 적은 처음이었다.

 

생각해 보면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연천 산골 학교에서 살 때, 금요일 오후부터 주일 밤까지는 아무도 없고 나만이 홀로 지내야 했을 때 느끼는 감정은 외로움이 아니라 두려움이며 고독이 아닌 불안감이었다. 두렵고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사람과 함께 살아가면서 좋은 관계를 맺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인간(人間)은 ‘사람 사이’를 뜻하는 단어이다. 사람을 규정하는 단어에 이미 공동생활이 담겨 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그가 타인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관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하는 것이다. 좋았던 사이가 하루아침에 나빠지기도 하고 나빴던 사이가 어떤 계기로 호전되기도 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결국 행복이란 좋은 사이를 얼마큼 잘 유지하는가에 달려 있다.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세심함이 필요하다. 가령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면 그 사람이 좋아할 확률은 낮다. 그래서 먼저 상대방을 이해하고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얼굴을 안다고 그 사람을 잘 안다고 할 수 없다. 상대방의 마음을 잘 알아야 진정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내가 하기 싫으면 남도 하기 싫을 것이라 단정을 짓는 행위도 오만이며 때로는 독선이 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함께 어울려 사는 이들을 잘 관찰할 줄 아는 사람은 상대방의 마음을 상황에 따라 잘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 ‘역지사지’가 바로 대표적인 능력이다. 처지를 바꿔 생각할 줄 아는 습관은 나로 하여금 상대방을 배려할 줄아는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가게 주고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고 결국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