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5-05-09 20:45 조회수 : 26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자전거를 취미로 갖고 있는 동창 신부가 있다. 취미라기보다는 거의 전문가 수준이라고 보아도 무난할 정도이다. 사목하는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서 굉장히 먼 거리를 다녀오기도 하고 때로는 자전거를 타고 높은 산에 오르기도 한다. 해발 400~500미터 정도되는 비포장 도로와 고개를 계속해서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면 다치기도 한다. 솔직히 그렇게 힘든 일을 일부러 찾아서 하는 모습이 이해되지 않지만, 열정을 갖고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럽다. 


그런데 동창 신부가 자전거를 타면서 느끼는 고통은 어떤 것일까? 멀리 타고, 산과 언덕을 오르다 보면 다리에 쥐가 날 수도 있고, 내리막에서 속도를 줄이지 못해 넘어져서 다치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틈틈이 시간을 내어 훈련하느라 월요일에 쉬지도 못하고 또 동창회에 오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자전거를 타려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고통이 있다. 나는 그렇게 힘들게 자전거 타는 모습이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지만, 사실 이해는 할 수 있다. 힘들지만 하나의 여정을 완주해 냈을 때의 성취감, 자전거 타면서 즐길 수 있는 속도감과 다양한 풍경, 시원한 바람, 아마도 이러한 것들이 동창 신부를 지속해서 자전거를 타게 만드는 요인일 것이다. 이러한 쾌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수반되는 힘겨움, 땀, 고통의 시간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인내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지고 있는 십자가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고통 속에서 살기를 절대로 원하시지 않는다. 우리 고통을 대신 젊어지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우리더러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만 한다고 말씀하셨을까?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일부러 고통을 찾아서 살라고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다가오는 힘든 일이나 고통에 대해서 피하지 말고, 힘겨운 과정을 잘 참고 극복하라는 말씀으로 알아들으면 된다. 인간이 고통이 있기 때문에 하느님께 간절히 매달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고통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인간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편안함을 찾는 것은 본성이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자신의 근본적인 욕구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힘겹고 어려운 일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십자가를 짊어짐으로써 고통받는 것을 원치 않으시지만, 자신의 편안함만 추구하면서 십자가를 지는 것을 회피한다면,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계신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고 사는 것이 힘들지만 우리에게 용기와 힘을 북돋아 주시면서 이 여정을 잘 따라나서라고 우리에게 손수 모법을 보여주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