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예수님과 순교자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5-05-06 21:17 조회수 : 50

예수님과 순교자


며칠 동안의 긴 연휴가 끝났다. 어제는 혼자서 조용히 성당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묵상하다가 신학생 때에 읽었던 에도 수사쿠의 소설의 『침묵』이 생각이 났다. 내용이 구체적으로는 생각이 나질 않지만, 17세기 일본 박해 시대를 배경으로 쓰여진 내용이었던걸로 기억된다. 그 당시의 배경은 나가사키의 순교지를 가면 아직도 흔적이 남아있다.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희생양을 찾다가 힘이 없던 천주교인을 박해했다. 마치도 예수님의 박해와 죽으심을 그대로 닮았다. 


예수님도 종교 지도자, 로마 제국, 헤로데 왕 등 기득권의 야합에 의해서 희생되신 것이다. 예수님을 죽인 핵심은 자신들의 지배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본과 조선에서의 박해도 같은 성격이었다. 조선은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았기에 천주교의 평등과 박애사상을 불온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래서 2만여 명을 치명 순교자로 만들었다. 한국의 치명 순교자들과 일본 열도에서 죽어간 순교자들의 믿음을 묵상하면 『침묵』에 등장한 순교자, 배교자들의 아픈 삶과 믿음이 마음 깊이 밀려왔다.


살고 싶은 마음은 모든 생물이 갖고 있는 본능이다. 그렇다면 본능과 반대인 죽음을 선택하는 믿음은 어떻게 가능했을가? “믿는냐? 아니냐?” 이 말 한마디가 생사를 가르는 순간에 거짓말을 안해서 죽임당했던 사람들, 배교의 징표로 십자가를 밟게 하는 ‘후미에’를 강요당했을 때 살기 위해서 십자가를 밟았던 날 밤에 울면서 자기 발을 씻은 물을 마시곤 했던 당대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그들은 대체 무엇을 바라는 사람이었던가?


순교자들도 목숨과 자식 사랑에는 여느 인간과 전혀 다를 바 없었지만, 그들에게는 숭고한 믿음이 있었다. 현실 속의 빈곤과 불의한 사회 현실, 하지만 인간 세계의 유한성을 훌쩍 넘는 영원하고 완전한 세상인 ‘하늘나라’를 발견한 것이다. 그로 인해서 그들은 영원한 생명은 이승의 짧은 목숨과는 비교할 수 없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우치고 하느님에 대한 절실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로 변하게 된 것이다. 순교자들은 나를 세상에 존재케 하고, 그리고 태어난 목숨을 양육하여 오늘에 이르게 한 부모와 사회에 대한 감사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신 분이 하느님이라는 사실은 그들의 믿음의 튼튼한 기초가 되었다. 


동양에서는 부모에 대한 효성을 바탕으로 이웃을 공경하며 세상에 대해 보은하는 것을 유교의 최고 가치로 여겼다. 천주교인은 기존의 가치 위에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두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도 서신을 통해서 세상의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신 분은 천주님이시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순교자들은 자신의 목숨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