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매일이 파스카이다
지금은 전례적으로는 여전히 부활시기이다. ‘파스카’라는 말을 예전에는 이집트 탈출과 관련한 유다인들의 축제를 가리키는 말로 ‘과월절’ 혹은 ‘유월절’로 번역했지만, 이제는 부활이라는 의미로 더 많이 쓰여진다. 그래서 파스카라는 말이 조금 더 익숙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의 삶과는 아직 거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여러분은 ‘파스카’하면 무엇이 생각이 날까?가 궁금해진다. 신앙인이라면 “예수님의 부활을 가리키는 말 아닌가요?” 하는 분도 계실 것이고,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하신 분들이라면 유다인들의 축제라는 의미도 알고 계실 것이다.
그럼 살짝 말을 바꾸어서 “당신이 알고 있는 ‘파스카’라는 말이 당신의 삶과 어떤 상관이 있나요? 당신은 부활의 삶을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답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사제인 나도 확신을 갖고 단호하게 답하기가 어렵다. 이유는 신앙의 삶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기에 지속적으로 묵상하고 성찰하면서 답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답하기 어려운 또다른 이유는 우리가 이 말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스카라는 말 자체가 ‘거르고 지나가다’ ‘건너가다’라는 히브리말에서 나온 것이다. 파스카는 ‘유다인 축제’ ‘부활’ ‘파스카 성삼일’ ‘신비’와 같은 명사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나의 삶과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건너가다’라는 동사의 의미로 받아들으면 이해하기가 좀더 쉬워진다.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수많은 것들을 끝임없이 건너가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길을 건너기도 하고 다리를 건너기도 한다. 어려운 순간들, 시험이나 힘든 순간들을 겪어 내면서 그 순간을 건너 지나간다. 더 단순하게는 매일의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제에서 오늘로 또 오늘에서 내일로 매일매일을 건너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신앙의 삶도 끊임없이 건너가는 삶이다. 하느님을 머리로만 알던 상태에서 삶으로 건너가는 것이다. 기도를 소홀히 해서 영성 생활이 부족하다고 스스로 책망하는 모습에서,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만나면서 그분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인격적인 관계로 이어가는 모습으로 건너가야 한다. 계명을 의무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고 자발적인 신앙생활을 통해서, 나 자신의 행복을 누구보다도 바라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알아가야 한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신앙생활의 기쁨으로 건너가야 한다. 이처럼 우리의 삶이 지속적으로 하느님을 향해 건너간다면, ‘건너가다’라는 의미를 담은 우리의 삶은 매일이 파스카의 삶이 된다. 이처럼 ‘파스카의 신비’는 부활 시기에만 기억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평범하고 단순하게 겪을 수 있는 일상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느님을 기억하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신비이다. 그래야 우리의 삶이 곧 진정한 파스카의 삶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