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의 기쁨
사제 생활 중에서 본당을 떠나 있었던 기간은 4년이었다. 주변에 인적이 드문 시골 학교에서 교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이라서 가끔 본당에서 분주하게 생활하던 시기가 그리워지곤 했다. 언제 어디에 있어도 사제라는 신원은 달라지지 않지만 그래도 사제는 하느님과 신자들을 이어 주기 위해 존재하는 만큼, 본당에서 신자들과 함께 북적거리면서 생활할 때 사제로 살아가는 기쁨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배에게 부탁해서 한 달에 한 번씩 주일 밤 10시 미사를 봉헌했다. 부주임 신부들이 주일 밤늦게 미사를 하는 것이 부담된다고 해서 내가 대신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미사를 봉헌했다.
미사 전에 고해성사를 드리고, 신자분들과 함께 하느님 말씀을 듣고 또 강론하면서 ‘역시 신부는 신자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라는 마음으로 피곤함을 극복하면서 미사 드리는 내내 나의 얼굴은 싱글벙글했다. 그런데 제대에 서서 신자분들을 바라보면, 그 표정이 아주 다양하다. 주일 밤늦은 시간이지만 주일을 예수님과 함께한다는 마음으로 밝게 웃으면서 미사를 참례하고 있는 분들도 계시지만, 또 어떤 분들은 피곤함에 찌들어 있어서 별다른 감흥 없이 무표정으로 미사를 봉헌하시는 분도 계셨다. 그런 분들을 보노라면, 저만 혼자 좋아서 미사를 봉헌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 시절에는 언제나 늦은 시간에도 미사를 오시는 분들께 기쁨을 전달해 드리기 위해서 전례와 강론에 최선을 다했다.
지금은 본당에 복귀해서 주임신부로 지내면서 여러 가지로 변화된 사목 현장을 느끼고 있다. 작게는 미사 중에 느끼는 고민이기도 하지만, 크게 보면 코로나라는 특별한 사건을 통해서 급격하게 변화가 된 우리 신앙생활 전체를 보면서도 하게 되는 고민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팬데믹과 같은 상황에서 신앙생활이라는 게 무엇일까?’ ‘신앙생활의 기쁨을 어디에서 찾을까?’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을 향해서 나아간다는 그리스도교 삶의 원리를 따라 사는 것, 영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게 될까’를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살고 있다.
신앙생활은 그리스도교의 교리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으로 조심스럽게 결론을 내려본다.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살면서 그분께로 나아가는 이유는, 그것이 하느님 모상에 따라 창조된 인간으로서의 마땅한 도리이거나 의무여서가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을 향해서 나갈 때 세상이 채워주지 못하는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를 우리가 더 잘 알아들을 수 있다면, 신앙생활이 부담이나 짐스러움으로 느끼기보다는 행복을 향한 여정으로 기쁨을 더 충만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