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성삼일을 지내는 우리의 자세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5-04-16 23:16 조회수 : 65

성삼일을 지내는 우리의 자세


며칠 동안 비가 내리고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다시 겨울이 온 것 같더니, 어제는 날이 너무나 좋아서 사제관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보라매 공원은 새롭게 단장하기 위해서 여기저기에서 공사가 한창이었다. 세상의 모든 만물은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이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내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구름과 강물은 끊임없이 변하기에 어제와 똑같은 구름도 강물도 아니다. 이처럼 시간도 공간도 세상의 온갖 만물도 모두 변화무쌍해서 생성, 변화와 소멸을 반복하고 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자그마한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았다. 손바닥을 뒤집을 것인가 말 것인가는 온전히 내 마음대로다. 물론 그런 권리는 모두 하느님의 허락하에서 이루어진다. 죽음과 삶처럼 세상의 모든 것은 하느님의 뜻 안에서 결정된다는 말이다. 


오늘은 ‘성 목요일’이다. 나는 해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으로 향하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삶도 바램대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과정 안에서 때로는 선이 악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가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선이 되어서 돌아오기도 한다. 공부를 못한 학생이 명문대학에 합격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좋은 기술을 배우고 그 기술을 바탕으로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기도 한다. 반대로 명문대학에 들어가고 고시에 합격하고 고위 공무원이 되어도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행동을 하는 것을 우리는 최근에 너무나도 많이 지켜보았다. 당장에는 성공이라고 축하하지만, 그 성공이 오히려 나쁜 일이 생길 수도 있는 게 우리의 인생이다. 성삼일의 전례는 예수님의 실패가 모든 것이 끝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실패로 인해서 더 좋은 성공의 길로 우리를 깨우치게 하는 것이 목적이며 과정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장의 근시안적인 면보다는 좀 더 멀리 하느님을 향한 눈길을 가지라고 권고하고 계신다. 그래서 “조금 있으면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라는 말속에는 하느님이 주신 삶의 방향으로 판단하라고 권고하신 것이다. 중요한 결정을 할 때 하느님이 뜻을 찾지 않고 내 생각대로만 결정하면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엄청난 사태 앞에서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내 생각보다는 하느님께서 지금, 이 순간에 나에게 무엇을 원하고 계시는가?’에 대한 성찰을 했으면 한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전례를 지내면서, 하느님을 믿고 바라볼 줄 아는 지혜의 은총을 풍성하게 얻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