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화초와 인간의 숙명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5-04-02 21:44 조회수 : 36

화초와 인간의 숙명


며칠 전만 해도 여름이 금방 올 것 같은 날씨였는데, 아직 아침 저녁으로는 날씨가 제법 쌀쌀해서 봄꽃들이 활짝피고 있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밖의 날씨와는 상관없이 방 안에 있는 화초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잘 자라고 있다. 낮에는 따스한 햇볕을 충분히 쬐고 필요한 물과 영양제를 충분하게 제공받으면서 실내에서 크는 화초는 밖에서 자라는 화초보다는 쉽게 꽃을 피운다. 환경이 좋은 실내에 있으면 아무 어려움도 없고, 근심과 염려도 없다.


화초에 물을 주다가 문뜩 사람하고 비교를 해보았다. 실내의 따뜻한 환경에서 자란 화초처럼, 어려움을 모르고 성장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게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좋은 환경 속에서 자라고 싶어 한다. 부모들은 무리해서라도 자식을 좋은 환경에서 키우려고 모든 정성과 돈을 들인다. 그런데 그렇게 자라다가 간혹 열악한 환경에 놓이면 대부분은 당황하거나 부적응하게 된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그동안 모든 것을 부모나 주변의 여러사람들이 다 알아서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마지막 황제’에서 본 첫 번째 장면이 생각이 난다. 중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푸이’는 중국이 공산화가 되면서 폐위가 된다. 폐위된 후에도 한동안 자기 옷을 입고 단추를 여미는 것도 못 해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푸이’처럼 주변 사람들의 과잉보호 속에서 자라거나 살아간다면 자신에게 닥친 타인과의 마찰처럼 기본적인 것들도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살았던 사람들의 공통점은 주변 사람이 자신과 조금만 다른 생각을 해도 그와 어울릴 수 없는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이유가 얼마나 합당한 것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수많은 이유를 양산해 낸다. 그 안에서 시간을 낭비하면서 자신만의 위대한 온실을 완성한다. 그러나 사람은 온실 속에서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들판을 농토로 만들고, 황무지를 옥토로 만들 수 있는 창조적인 역량을 갖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것은 어려운 역경이나 마찰을 극복하면서 더 넓은 세상 한가운데서 어렵더라도 극복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간이 갖고 있는 현실이다.


안타깝게도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온실 속에서 자라는 화초 같은 삶을 살고 있다. 혼자서는 단 며칠도 살아갈 수 없는 약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온실을 떠나 들판에 심어진 화초는 생명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처럼 현대인들도 거친 삶을 살아가는데 힘들어한다. 분명한 것은 인생의 완성은 온실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들판에서 이루어진다. 힘이 들더라도 내가 지금 닥쳐있는 어려움에 좌절하기보다는 극복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는 하루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