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인간은 변화될 수 있다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5-03-30 21:02 조회수 : 56

인간은 변화될 수 있다 


어제 주일 복음은 '탕자의 비유'였다. "걸레는 빨아도 걸레다."라는 말이 한동안 유행했었다. 이 말에는 사람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어제 복음에 의하면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이유는 사람의 성정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첫째는 '본연지성'으로 뜻은 '본래 그러한 성질'을 의미한다. 타고난 성질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거북이가 노력해도 토끼처럼 빠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동양에서는 타고난 성질은 하늘에서 부여한 것이라고 하여 '천성'이라고 부른다. 천성과 인성, 성질은 모두 같은 말이다.

둘째는 '기질지성'이 있는데, 이는 '후천적으로 띠는 기운'을 의미한다. 사람에게는 성질 외에도 성격이 있다. 이 성격이 바로 기질지성이다. 성질은 쉽게 바뀌지 않지만, 성격은 환경에 따라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예컨대 성질이 급한 사람도 여유로운 환경에 지속해서 노출되다 보면 어느 정도 느긋해질 수 있다. 성질이 부드러운 사람도 각박한 환경에서 드센 사람들과 오래 교류하다 보면 거칠어질 수 있다. 작은 아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회개한 것이 바로 '기질지성'의 한 예가 될 수 있다. 이처럼 주어진 환경에 따라 사람이 바뀔 수 있다. 동양에선 이를 인격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인성과 인격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성품이다. 동양에서는 성품을 인품이라고 한다. 인품이 마냥 거칠고 급한 사람도 잘 갈고 닦으면 온유해질 수 있다. 반대로 인품이 한없이 부드럽고 느린 사람도 잘 계발하면 강인하게 변화가 될 수 있다. 

철학에서는 변화(變化)를 '변'과 '화'로 구분하고 있다. 변이 물리적인 변화를 의미한다면 화는 화학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예컨대 음료수 캔을 밟아 찌그러뜨렸다면 그 음료수 캔은 형태가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변'한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본질은 변한 것이 없다. 하지만 얼음이 물이 되고 물이 수증기가 되듯, 물의 구성은 변한 것이 없지만 그 성격이 완전히 변해서 이전에 무엇이었는지 알기 어렵다면 그것은 '화'한 것이다. 이를 사람에게도 적용해 보면, 다이어트에 성공했거나 성형 수술을 받아서 외양이 달라졌다면 그 사람은 '변'한 것이지 '화'한 것은 아니다. 복음 속에 작은 아들은 진심어린 회개를 통해서 달라졌는데, 이는 '변'한 것이 아니라 '화'한것이다.


복음 속의 작은 아들은 위대한 하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그는 용기를 내어서 자신이 회개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복음에서 작은 아들처럼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같지 않고,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내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이 작은 변화들이 모여 자신을 처절하게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회개를 통해서 변화가 된 작은 아들은 "걸레는 빨아도 걸레다"라는 말이 절대적인 진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