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경 위에 올려진 등불
종교에서는 신을 ‘창조주, 위대한 힘, 하느님, 태양, 야훼, 엘, 바알, 알라, 수호자, 심판자, 빛, 불, 생명, 자연, 대지, 산, 자비, 은총, 아버지, 어머니, 정령’ 등으로 호칭이 다양하다. 속성이나 현상으로, 더러는 고유명사로도 표현하고 있다. 인도의 한 종교에서는 1,000여 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기도를 시작한다. 예수님께서도 당신 자신을 ‘생명, 길, 진리, 빛, 착한 목자, 문’으로 비유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당신을 진리로 표현하는 것은 인간과 물질세계는 유한함으로 인해서 오류가 많아서, 절대적인 진선미는 하느님에게만 있다는 의미이다. 인간의 오류는 다툼과 갈등과 고통, 죄와 악의 근거가 된다고 보기에 완전자이시며 절대 존재이신 신의 진리를 따른 것이 구원의 시작이라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인간의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 때문에 신의 진리는 부정당하고 사악함이 기승을 부리는 시대이다. 한국 사회는 과거 친일세력들의 권력을 해방 후 그대로 이어받은 기회주의 세력들이 오늘까지 권력을 잡고 대물림으로 지배계급을 형성했다. 그들의 후손들로 구성된 정치 관료와 기업과 언론과 학계에 의해 혹세무민의 프레임 선동질에 어리석은 국민들은 부화뇌동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도 결코 자유롭지 못해서 많은 성직자들과 교우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진리를 십자가에 못 박고, 정의와 진실은 어둠 속에서 질식당하고 있다. 그로 인해서 성직자와 신자들은 무기력하고, 종교는 길을 잃고 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게 마련이다”(루카 17). 진리에 깨어 있는 삶만이 우리의 믿음을 등경 위에 올려진 등불이 될 수 있게 한다. 이것을 어기면 ‘돌아온 탕자’처럼 아버지를 떠나 욕망의 길을 쫓아갔지만 본 것은 신기루의 무상함뿐이다. 잘못하면 우리의 삶은 끝없는 좌절과 패배와 열등감과 피해의식으로 신명을 잃게 된다.
진리는 내가 듣지 못해도 숲의 음악처럼 노래하고 대지의 바람처럼 스쳐오며, 내가 보지 못해도 걸으시며 현존하신다. 비록 나의 우매함으로 알아보지 못해 영접하지 못해도 진리는 손상되지 않으며 늘 따르는 자의 손을 잡아주신다. 진리를 따르는 사람은 진리의 조명을 받고 빛나는 생명력과 신명으로 살기에 얼굴은 밝게 빛나고 마음의 정은 깊고 감춘 것 없고 먼빛에 눈길을 둔다. 진리를 숭상하는 이는 누구나 그 빛살로 자신을 정화하고 정련되어져 이웃에게 자신을 헌신한다. 그럼으로써 등경 위에 올려진 등불이 된다.
어두움 속에서 진리를 숨기고 속이는 자는 세상에서는 제법 유익함을 챙긴 듯하지만, 해가 뜨면 죄악이 만천하에 드러남을 피할 수 없다. 하느님의 자비는 한없는 바다와 같지만, 그 심판은 머리카락 세듯 할 것이기에, ‘오래 산 악인은 일찍 죽은 의인 앞에 얼굴을 들지 못하리라.’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하느님의 그물은 엉성한 듯해도 죄인에게는 촘촘하기가 그지없기에 성체성사로 하느님을 영접하는 진리의 삶이 지속되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