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박쥐보다도 못한 인간들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5-02-08 03:43 조회수 : 90

박쥐보다도 못한 인간들


동물 중에 가장 억울한 동물을 꼽으라면 단연 박쥐라고 생각한다. 박쥐는 평상시에도 인식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팬데믹 시절에는 코로나 균의 숙주라고 알려지면서 불에 기름을 부은 것처럼 미움은 더 커졌다. 박쥐는 태생적으로 300여 개가 넘는 바이러스 균을 갖고 있다. 그런데 자신은 날아다닐 때 40도가 넘는 높은 체온 덕분에 바이러스로 인한 병에 걸리지 않는다. 사실 알고 보면 박쥐는 인간에게 가장 이로운 동물 중의 하나이다. 우리가 그렇게도 싫어하고 여러 가지 병균을 옮기는 모기를 가장 많이 잡아먹는 동물이 박쥐이다. 하루에 박쥐는 자기 몸무게의 1/3 정도나 되는 모기를 잡아 먹는다. 알고 보면 박쥐는 우리의 선입견과는 달리 절대로 사라져서는 안 되는 동식물 다섯 가지 가운데 하나로 꼽혔을 정도로 인간에게 이로운 동물이다.


박쥐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는 것은 동굴에서 살면서 밤에 활동하기에 음흉할 것이라는 선입견과 사람의 피를 흡혈한다는 근거 없는 이야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입견에 기름을 부은 것이 이솝 우화에서 박쥐 이야기가 결정적으로 작용을 했다. 우화 속에서 날짐승과 들짐승이 싸움할 때 양쪽으로 유리한 편을 골라 오가다가 나중에는 어느 편에도 속하지 못했다는 이야기 전개는 박쥐를 단숨에 상종해서는 안 되는 이중성격의 아이콘으로 만들고 말았다. 

지구상에서 사는 박쥐의 대부분은 과일이나 곤충을 먹고 사는 반면, 동물의 피를 흡혈하는 박쥐는 단 한 종류밖에 되지 않는다. 그 종류도 사람의 피를 먹는 것이 아니라 열대지방에 사는 큰 짐승의 피를 먹고 사는데, 그것도 모기처럼 혈관에서 직접 피를 취하기보다는, 잠을 자는 동물의 목 부위를 발톱으로 긁어 상처를 낸 뒤에 거기서 스며 나오는 피를 핥아 먹는다고 한다.


문제는 흡혈박쥐는 신진대사가 유난히 활발해서 이틀 정도 피를 먹지 못하면 힘을 쓰지 못하고 사흘이 지나면 죽는다. 그래서 이런저런 사정으로 피를 먹지 못해서 신진대사가 급격히 떨어져서 죽을 운명에 처한 동료 박쥐에게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피를 배불리 먹고 온 박쥐들이 배고픈 동료에게 피를 나누어주는 것이다. 동굴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서로 피를 게워 내면 굶주린 박쥐가 받아먹는다. 이렇게 피를 받아먹은 박쥐는 살 수 있게 되는데, 더 놀라운 것은 그 고마움을 기억하고 다음번에는 자신이 같은 행동을 함으로써 은혜를 갚는다고 하니, 박쥐를 함부로 깎아내리거나 욕할 것은 아니지 싶다. 


인간에게 부정적인 동물로 인식되는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살아가는 박쥐에게도 피를 나누는 정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단 사흘만 굶어도 죽는 박쥐가 평균 수명이 15년 정도를 산다는 것은 그들의 '호혜성 이타주의'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박쥐의 이야기를 듣다가 문뜩 사람들이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다고 소외시키거나 박쥐라고 놀리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싶다. “박쥐도 ᅠ함께 살아가려고 ᅠ피를 나누는데 ᅠ당신은 아웃과 함께 살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