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좋은 울음터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5-02-05 05:19 조회수 : 84

좋은 울음터


어제도 마음이 편치않고 하루 종일 우울했다. 입국도 못하고 베트남으로 돌아간 도안 신부와 새벽에 통화를 하고 나서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어서 나 혼자 캄캄한 밤하늘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 같은 하루였다. 넋 놓고 있다가 문뜩 생각나는 책이 있어서 점심을 먹고 서점으로 향했다. 연암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를 찾기 위해서 였다. 책의 내용은 1780년 중국의 건륭황제 만수절(70세) 축하 사절단의 일원으로 6개월간 중국을 다녀와서 쓴 일종의 여행기 형식의 책이다. '열하'는 연암의 최종 목적지였는데, 건륭황제의 여름 별궁인 허베이성 동북부 지역에 머물고 있었던 지역의 이름이다. 그곳에 온천이 많아 '겨울에도 물이 얼지 않는다'하여 '열하'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열하일기>는 6개월간의 장정 속에서 일어난 일화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내가 읽고 싶어했던 '호곡장'도 그중의 하나이다. 제목을 풀이해 보면 '통곡하기 좋은 곳'이라는 뜻이다. 연암 일행은 압록강을 건너서 열흘을 걷는 동안에 산 하나 없이 펼쳐지는 요동 벌판을 만나게 된다. 일단 그 규모에 압도 당했던 연암은 다음과 같은 표현을 했다. "내 오늘에야 처음으로 인생이란 본시 아무런 의탁함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떠돌아다니는 존재임을 알았다. 아, 참 좋은 울음터로다. 가히 한번 울 만하구나."라는 말을 남겼다. 드넓은 요동 벌판을 바라보면서 경치에 마음을 빼앗긴 것이 아니라, 그 넓은 곳을 한번 울어볼 만한 좋은 장소로 표현한 연암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그러고 보니 살다 보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목청을 높여가면서 실컷 울고 싶은 때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참는데, 왠지 운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남들이 보면 이상한 오해를 할까봐 하는 눈치 때문일 거다. 그런데 생리적으로 가끔씩 우는 것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여러 연구에서도 나왔지만, 무엇보다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운다는 것은 아직도 낯선 것도 또한 사실이니 맘 놓고 운다는 것도 남을 신경써야 하니 참으로 어렵다. 


240 여년 전에 쓰여진 연암의 <호곡장>은 그런 면에서 남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에는 경제적인 이유와 건강의 이유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비상계엄 사태'과 해결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ᅠ스트레스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이러한 것은 결국 건강한 삶으로 가는데 어려움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어디 마음 놓을ᅠ데가 없는 것이 우리가 겪는 현실이다. '한번 속 시원하게 울어볼 만한 참 좋은 울음터'인 나만의 장소가 있다면 그곳에서ᅠ마음껏 마음속 응어리를ᅠ울음으로ᅠ풀어내면 삶이ᅠ한결 가볍고 새로워질 수 있을텐데라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진다. 혹시 님은 한번 마음껏 울어볼 만한 좋은 울음터를 갖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