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체념과 두려움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5-02-04 02:56 조회수 : 144

체념과 두려움


어제 새벽 비행기를 타고 도안 신부가 공항에 도착했지만 결국은 입국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치료를 위한 성모 병원의 초청장을 근거로 한국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았기에 입국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법무부에서 입국 불가로 판정을 내려서 어제 저녁 6시 30분 비행기로 베트남으로 다시 돌아갔다. 입국을 못해서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전화 통화로만 여러차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랫동안 여러 사람이 준비했었는데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서 하루 종일 허탈했다. 내가 이런 상태라면 본인은 얼마나 더 답답하고 두려웠을까? 더구나 첨단 장비로 치료를 받는다는 희망을 품었기에 상대적 박탈감은 더했을 것이다. 사람이 중병 앞에서 의연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래도 도안 신부는 다시 돌아가야 하는 현실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게 마음이 더 아팠다. 


어제, 나의 하루는 엉망이 되고 말았다. 살아가면서 나와 관련된 일이 원치 않게 진행되지 않을 때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그로 인한 결과를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되면 두려움을 느낀다.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잘못되더라도 대응할 수 있고 감당이 된다면 두려움은 생기지 않는다. 가령 화재로 모든 것을 잃었을 때, 보험으로 복구할 수 있다면 걱정과 두려움은 작아진다. 그렇지만 마땅한 대응책이 없고, 나로 인해서 이웃이 손해를 봤다면 걱정과 두려움은 클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두려움은 어렵지만 마음으로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다.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은 가진 것을 지키고자 하는 애착에 근거를 한다. 목숨, 가족, 직장, 명예, 재산, 자존심과같이 중요한 것을 잃게 되면 두려움이 생긴다. 만약 곳간이 비었다면 도둑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가진 것이 없으면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다. 가끔은 일이 터져 감당할 수 없고 최악의 상태인데도 걱정 없는 사람이 있다.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거나 아예 체념하는 경우이다. 체념은 나의 능력 밖이라고 판단해서 미련을 갖지 않는 것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도안 신부가 체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신앙인은 믿는 구석을 가진 사람들이다. 베드로는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을 보고 자신도 예수님처럼 하고 싶어서 "주님! 저도 걷게 해주십시오" 하고 청한다. 예수님으로부터 허락을 받은 다음에는 겁 없이 물 위를 걷게 된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자신의 목숨이 주님 손에 달려 있는데 허락을 받았으니, 물에 빠져 죽을 걱정은 없다는 확신을 가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심상치 않은 풍랑이 불자 순간 두려운 마음이 들었고 그 순간 물에 빠지게 된 것이다. 믿는 구석을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믿음의 모범인 순교자들은 목숨보다 더 큰 목숨, 영생이 더 컸기 때문에 두려움도 넘어설 수 있었다. 순교가 천국을 확실하게 보장한다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삶에 근심, 걱정, 두려움 없이 살아가는 길은 가진 것에 대한 애착을 버리던가, 아니면 더 큰 것을 구하던가 둘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 나를 만드신 하느님께서는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시며 아무 때고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이다. 신앙인이라면 '하느님이 보호하심 속에 살아가기에 체념과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라는 확신을 갖아야 한다. 이 글을 쓰면서 ᅠ도안 요셉 신부가 어제 일어난 일에 체념하지 말고 두려움을 극복해서 다시 건강을 되찾고 진정한 사제로 거듭 태어나길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