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라인강의 기적'의 진정한 가르침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5-02-02 18:32 조회수 : 83

'라인강의 기적'의 진정한 가르침


경제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사람들의 표정도 밝지 않은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이 먹고 사는 문제가 어려우면 당연히 기분이 좋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우리가 화를 내거나 신경질을 부린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매사가 어려울수록 어떤 삶이 현명한 삶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 경제 발전의 모델이 독일이라는 이야기를 어릴 적부터 학교에서 많이 배웠다. 당시에는 광부와 간호사의 활약 때문에 더욱 우리의 가슴에 와닿았다. 우리의 경제 발전을 표현한 '한강의 기적'도 독일의 '라인강의 기적'이라는 표현에서 가져온 것이다. '라인강의 기적'을 가능하게 한 이유 중에서 독일 사람은 담배를 필 때도 열 사람이 모여야 비로소 성냥을 켰다는 이야기는 5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에 어린 마음이지만 '근검절약'의 표현이 내 가슴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독일 사람들도 아끼면서 살아서 부자가 되었구나, 그렇다면 가난한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잘 살수 있을까?라는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의 우리는 학용품이 부족해서 지우개는 닳아 없어질 때까지 몽당연필은 볼펜 자루 끝에 박아 썼다.


몇 년 전에 독일을 여행하다가 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면서 케첩이 부족하기에 좀 더 달라고 했더니 종업원이 없다고 거절했다. 눈에 빤히 보이는 곳에 잔뜩 있었지만 거절당한 것이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고 동양 사람이라서 무시를 하나?하는 생각에 감정이 상해 있는데 함께 여행하던 후배 신부가 정확하게 이유를 설명해 줬다. 식당에서 너에게 제공해야 할 양은 이미 주었으니 더 이상 요구하지 말라는 뜻이란다. 우리 풍습대로라면 정말이지 정나미 떨어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들은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다.


독일 사람들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후배 신부가 자신이 경험한 독일 할머니의 이야기도 해주었다. 신부가 야채 가게에서 필요한 과일을 고르고 있는데, 옆에 한 할머니가 수박을 고르고 있었다. 독일의 야채 가게에서는 수박의 크기나 무게와 상관없이 같은 값으로 팔았다. 큰 수박을 놔두고 작은 수박을 선택한 할머니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돌아온 할머니의 답이 걸작이었다. "나는 혼자 살고 있으므로 큰 수박이 필요하지 않아요. 이 작은 수박으로 나는 한동안 충분히 먹어요. 큰 수박을 내가 사 가면 가족이 많은 사람이 작은 수박을 사게 될 거고 그러면 그 가족에게는 부족하고, 나는 수박을 남기게 되고 결국은 썩어서 버릴 텐데, 그럴 필요가 있겠어요?" 


우리의 정서로는 남든 썩든 일단은 같은 값이면 무조건 큰 것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삶이라고 당연시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할머니처럼 자신에게 알맞은 수박을 선택해서 헛되게 버리는 것을 최소화해야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의 생각과 말 속에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ᅠ함께 더불어 살아가려는 마음을 발견했다고 한다.ᅠ 비록 작은 에피소드지만 욕심내지 않고 자신에게 가장 맞는 수박을 선택한 할머니의 마음과 손길에서 진정한 '라인강의 기적'은 물질의 풍요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려는 마음이라는 가르침을 발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