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국민도 공범이었다
대한민국의 상황이 실타래가 엉킨 것처럼 복잡하고 위기 의식을 느끼게 만든다. 무엇이 잘못되어서 정치, 경제 그리고 교회를 포함한 사회 전반적으로 위기가 왔을까? 나는 문뜩 히틀러와 독일국민이 생각이 났다. 철학적 사고로 현명함의 모범을 보였던 독일인들은 어떤 이유에서 히틀러의 만행을 지켜보기만 했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정치권에 입문하기 전의 히틀러는 실패한 화가이면서 건축가였고 늘 열등감 속에서 살았다. 그 감정이 커지면서 전세계를 상대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입지를 위해서는 군중의 긍정적인 마인드보다는 부정적인 마인드를 자극했다. 이런 생각과 행동이 히틀러라는 한 개인의 파멸 뿐만 아니라 인류에게도 커다란 해악을 가져왔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아쉬운 점은 히틀러가 잘못된 판단을 했을 때 주변에서 적극적으로 조언을 해주었던 사람이 없었고,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아부하는 사람들만이 주변에 가득했던 것이다.
당시 히틀러와 나치는 국민들에게 극도의 공포감을 조성했고, 당시 독일인들은 죽음의 수용소의 존재를 알면서도 자신들에게 올 피해를 걱정하면서 진실을 언급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고 재판을 통해서 알려진 바로는 히틀러와 추종자들이 벌렸던 범죄의 내용과 당시 상황을 알고 있던 정치인, 판사, 경찰, 변호사, 성직사, 사회복지사의 숫자가 적어도 수만을 헤아렸다고 한다. 기업인들은 부덕하게 유대인들과 전쟁포로들을 하나의 인격체보다는 공산품이나 생산품들을 생산하는 도구 정도로 취급했고, 많은 의사들도 유대인 학살의 주범인 하인리히 힘러에 동조를 해서 그가 만든 의학연구에서 생체실험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뿐만 아니라 수 많은 군인, 경찰과 공무원은 반체제 인사들과 유대인을 색출하는데 동원되었고 그들의 최종 목적지인 수용소로 보내는데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자신에게 올 피해가 두려워해서 침묵으로 일관했다. 당시 독일 사회의 분위기는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모르는 사람은 질문하지 않으며, 질문한 사람에게는 대답하지 않는다’라는 불문율이 지배를 했다. 그들은 입과 귀와 눈을 닫은 채 자신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환상을 만들어 나갔던 것이다. 훗날 전쟁이 끝나고 독일인들은 적극적이지 않았던 행동을 논리를 근거로 자신들을 방어하면서 합리화했다. 자신들은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이 자신들과는 상관없다고 확신했지만, 그들의 바램과는 달리 역사는 독일 국민들을 나치의 공범으로 단정했다.
수용소 피해를 기록한 사람들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바로 이런 고의적인 태만함과 침묵 때문에 그들이 유죄라고 생각한다.” 직접 죄를 짓는 행위 뿐만 아니라 나는 모른다는 고의적인 태만함과 책임 회피가 더 큰 죄를 일으킨다는 것이 그의 뼈아픈 지적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한 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나만 편하고 안전하면 그만이라는 고의적인 태만과 무관심으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침묵을 한다면 그들과 공범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때로는 침묵이 죄의 원천이라는 것을 깊이 명심하지 않으면 어느 날 문득 그 죄의 결과가 우리를 덮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히틀러와 독일 국민이 저질렀던 역사의 오류 안에서 배워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