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화처럼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4-12-05 00:19 조회수 : 67
상상화처럼
예수님의 육화에는 여러 가지 불가사의 한 이야기들로 점철되어 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들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법을 선택하셨다. 천사를 보내셔서 약혼한 처녀로서 아기를 가질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었던 마리아를 선택하시고 임신부터 시키셨다. 그러나 반대로 마땅히 자식을 가졌어야 할 즈카리아 엘리사벳 부부에게는 태기를 닫으셨다.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전통의 사회에서 자식을 낳지 못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일수 있고 언급하면 입만 아프다.
자식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것과 동일시 하던 시절에는 그 자체가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지는 보지 않아도 명약관화하다. 아마도 부부는 간절히 기도하고 몸에 좋다는 약과 치료에 공을 들였지는 보지 않아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그래도 하느님은 꿈쩍도 안 하시다가, 이제 폐경을 넘긴 늙은 나이에서야 천사를 보내시면서 전하기를 “너는 아기를 가졌다!”였다. 젊은 시절을 통째로 좌절과 박탈감으로 울며 보냈고, 이제 간신히 자식 없이도 살아가는 데 익숙해진 노년에 이르렀는데 “너의 바램이 이루어졌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부부가 느꼈을 감정을 상상해보았다.
향기는 꽃과 함께 있지만 열매는 꽃이 시들은 다음에야 맺게 된다. 절대로 꽃과 열매는 동시에 얻을 수 없다. 열매는 꽃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만약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는 일이다. 꽃말이 이룰 수 없는 사랑, 잎과 꽃이 만날 수 없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상상화라는 꽃이 있다. 초봄에 난 잎이 다 시들어져버린 8월에야 화려하게 꽃을 핀다. 잎은 꽃을 보지 못하고 꽃은 잎을 보지 못하는 상상화에서 즈가리야와 엘리사벳의 부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젊은 시절에는 자식을 보지 못하고 다 잃고 난 후에야 자식을 얻은 엘리사벳의 운명은 상상화처럼 아쉬움 가득한 우리네 인생 같기도 하다.
본당 사제로써 아름다운 공동체를 소망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현실은 꽃과 향기와 열매를 동시에 얻고 싶은 욕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노력하는 모습이 어쩌면 즈카리야 부부의 모습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림 시기인 지금 나의 노력이 바로 결실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되돌아 보게 된다. 하느님의 뜻을 내가 어찌 알겠는가? 어쩌면 나의 삶 그 자체가 상상화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젊은 시절 자식을 갖지 못했기에 온갖 수모를 겪었을, 그러나 부부의 기도를 잊지 않으신 하느님으로부터 늘그막에 축복을 받은 즈카리야 부부의 삶을 오랫동안 기억하면서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