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연과 쓰레기통
바쁜 오전이 지나면 혼자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래서 성당에서 묵상을 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곤한다. 대부분은 성서 말씀이나 본당 운영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부분이 사람들에 관한 부분이다. 하느님의 일을 함께 사제들 생각에서 시작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지나간 인연이 있었던 사람에 대해서 무수히 많은 생각을 하다보면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떠오른다. 생각이 복잡해지는 이유는 함께 지내면서 상황에 따라서 관계가 복합적으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사이가 좋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대립하고 미워하는 사람도 생각난다. 동일 인물이라도 상황에 따라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감정이나 느낌이 수시로 변하기 마련이다. 그래도 많은 신자들 덕분에 기쁜게 사목하면서 살았지만 아주 가끔씩 사람 때문에 한없이 미워지고 감정이 격하면 저주하고 싶은 생각으로 마음의 평정심도 잃기도 했다. 사람에게 상처 받는 날이면, 문득 사람이란 존재가 역겨워지기도 한다. 그래도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면 우린 사람 때문에, 사람 덕분에 살아갈 수 있었다.
사람 때문에 상처받았던 날들이 더 기억되는 것도 모든 관계가 좋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상대방과의 관계가 깊고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상대의 반응이 나의 기대와 다르다고 느낄 때는 실망감이 더 커지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상대방에 대한 약간의 미련 때문에 마음을 줄이지 못하기도 한다. 박절하게 인연을 끊기에는 그동안 지내온 시간들이 아쉽게 느껴지고 한 순간에 인연을 끝내는 것이 잔인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저하기도 했다. 그 저변에는 혹시나 하는 희망이 마음이 있기 때문에 쉽게 마음을 줄이지도 못한 그런 날들도 많이 있었다.
사람이 살면서 제일 슬픈 때는 내가 상대방으로부터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질 때가 아닐까? 난 그 사람을 이만큼 생각했는데 그 사람은 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을 때, 내가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것보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너무나도 슬프기 마련이다. 나는 가끔씩 그런 순간이 계속될 때면 사람의 관계도 음식처럼 상하면 냄새가 나거나 색이 변해서 미리 알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잘못된 만남이나 관계 때문에 인연에 탈이 나지 않고 좋은 순간에 헤어져서 내 마음이 상하게 되지 않도록 말이다.
만일 누군가 나에게 쓰레기가 잔뜩 담긴 봉투를 준다면 그냥 미련없이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면 된다. 그걸 굳이 들춰서 실망하고 서운해하며 혼자 상처받을 이유가 없다. 혼자서도 힘겨운 내 삶에 도움이 전혀 안되는 사람들까지 안고 갈 필요는 없다. 살면서 좋지 않은 인연을 개선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여야 하지만 모든 사람들을 마음에 간직하면서 살아갈 필요는 없다. 살아가면서 도움이 되지않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것도 살아가는 방법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간절하게 드는 요즘이다.
스페인 톨레도 성당에 있는 피에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