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라망카
살라망카는 스페인 중서부 카스티야레온 지방에 있는ᅠ그 지역의 주도이다. 토르메스 강 북쪽 기슭의 해발 778m인 비교적 고지대에 자리 잡고 있는 유서 깊고 예술적인 도시 중ᅠ하나이다. 이베리아인들의 주요 정착지로서 BC 217년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의 침략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오랜 도시이기도 하다. 무어인들의 통치 기간 중에는 주교가 오비에도에서 살았지만 7세기에ᅠ이르러서는 살라망카가 주교좌 성당의 지위를 얻었다. 지리적 위치의 중요성 때문에 8~11세기에 그리스도교도들과 무어인들 사이의 전쟁터가 되었다가, 1087~1102년에 그리스도교도들이 다시 이주해 오면서 다시 발전했다. 알폰소 9세가 통치하던 1218년에 살라망카 대학교가 세워졌다. 1570년에는 아빌라의 성 데레사가 ‘맨발의 가르멜회’의 일원인 카르멜리테 수녀원을 세웠다. 스페인 내란(1936~39) 때는 프랑코 총통이 이곳의 주교관에서 살았다. 로마네스크양식의 구(舊)대성당(1140경 착공)과 신(新)대성당(1513 착공, 18세기완공)을 비롯하여 유서 깊고 훌륭한 유적들이 많이 있다.
살라망카 대학교
살라망카 대학은 1218년 알폰소 9세때 설립되었지만 실제적으로는 그의 손자인 알폰소 10세에 의해 1254년의 교회법 강좌 3개와 각기 부설된 문법, 인문, 물리학 강좌로 출발했다. 16세기 말까지 살라망카 대학교는 파리 볼로냐ᅠ옥스퍼드대학교와 함께 유럽에서 배움의 중심지였다. 프란시스코 데 ᅠ빅토리아는 1526~46년 국제법의 기본 원리에 관한 강의를 했다. 학자이자 시인인 루이스 데 레온이 이단으로 몰려 종교 재판소에 서게 되었던 1572~76년의 4년간을 제외하고는 1561년부터 그가 죽은 해인 1591년까지 강의했다. 그의 업적을 기리고자 이 대학의 한 강의실은 아직도 그의 강의실로 명명이 되어 있다. 이 대학은 1584년 전성기를 맞이하여 학생수가 당시에는 엄청난 7,000명에 달했다. 16세기 후반부터 쇠퇴해서 1875년에는 재학생수가 391명으로ᅠ줄어들기도 했었다.
19세기초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점령을 했었는데 퇴각하면서 대학 건물의 1/4가량을 파괴하기도 하였다. 1835년까지 교회에서 관리했다가 그 이후로는 분리하여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철학, 문학, 법학, 과학, 의학, 약학 등의 학과가 개설되어 있다.
신대성당 맞은편에 있는 대학교의 본관은 플래터레스크 양식으로 세워진 서쪽 문이 유명하다. 근처에는 이 대학교 역사상 가장 유명한 총장이며 학자이자 작가였던 미켈 데 우나무노의 관저가 있는데, 그의 서재와 개인 유품들이 보관되어 있다. 신대성당의 남쪽에는 호세 마메르토 에르모시야에 의해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설계된 과학, 철학, 문학 등의 학부로 이루어진 콜레히오 데 아나야(1760~68)와, 기숙사가ᅠ딸린 대학으로 유일하게 남아있는 콜레히오 데 폰세카(1527~78)가ᅠ있다. 콜레히오 데 폰세카는 이베리아 반도전쟁(1808~14) 이후 아일랜드에 양도되어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 신학교로 사용되어 콜레히오 데 로스이를란데세스로 널리 알려졌다. 법학부는 대학교에 인접해 있고 새로 생긴 의학부는 강 서쪽 유역에 있다. 1950년대에 3개의 기숙 대학이 이 도시에 설립되었는데, 스페인에서 이러한 형태의 교육기관으로는 처음이었다. 옛 예수회 신학교(1617~1755)는 지금은 교황청립대학교가 되어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신부나 ᅠ신학도들이다.
살라망카의 성당들
살라망카 대성당은 1984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성당들은 로마네스크, 고딕, 무어식, 르네상스, 바로크식으로 건축되었다. 에스파냐에서 손꼽을 정도로 아름다운 대성당과 등을 맞대고 있는 새로운 대성당은,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고딕 양식 건축을 대표하는 뛰어난 건축물이다.
이밖에도 호세 데 리베라가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를 주제로 그린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녀원 성당,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와 관련성이 있는 성 도미니코 수도회의 스테파노ᅠ성당, 로마네스크 양식으로된 켄터베리의성 토마스성당, 12세기의 성 마르틴 성당 등도 뛰어난 유적들로 꼽힌다.
살라망카의 마요르광장
회랑이 있는 아름다운 마요르 광장(1729~33)은 도시의 중심에 있는데, 알베르토 데 추리게라가 설계하고 안드레스 가르시아 데 키뇨네스가 완성했다. 지금도 주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어서 애칭이 ‘살라망카의 거실’로 불리우고 있다. 처음에는 투우장으로 가끔 사용하기 위해 지은 이ᅠ광장은 스페인의 역대 왕들과 프랑코 장군의 큰 메달이 양쪽에 장식되어 있는 회랑으로 유명하다. 광장 중앙에는 알베르토 데 추리게라가 설계한 시청사도 있다.
비종교적 유적들로는 아치 중 15개가 로마 시대에 세워진 로마 시대의 다리, 거의 도시 성벽 유적지로 되어 있는 토레 델 클라베로(1480경), 벽이 가리비의 조가비로 만들어진 조각물과 탈레베나 말도나도 재상이 소유했던 16세기의 카사 데 라스콘차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