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생애
아빌라 데 로스 카바에로스는 ‘성인의 도시’라고 불리우고 있는데, 수도 마드리드에서 북서쪽으로 약 85Km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로마시대에 해발 1,131m의 높은 위치에 있어서 로마시대부터 군사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 당시에 건설된 도시 성벽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어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한때는 무슬림과 그리스도교 간에 300년 동안이나 공방전이 지속되던 곳이다. 성안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 빈센트 대성당과 성녀의 탄생지에 세워진 아빌라 대성당과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품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궁전이 있다. 무엇보다도 아빌라 대성당 중앙 제단에는 성녀께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성녀가 20년 동안 수도생활을 하던 엔까르나시온 수도원은 아빌라 성벽 외곽에 있다. 성녀께서는 17세에 영적 신비 체험을 경험하고 19세에 성인전을 읽고는 감동을 받아서 수녀가 될 것을 결심하고 가르멜 수도원에 입회를 하셨다. 수도생활을 하던 어느 날 예수께서 매질을 당하시는 환시를 보고는 자신의 냉담한 수도생활을 깊이 부끄럽게 여겼다. 또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읽고는 스스로의 영혼이 처한 한심스러운 처지를 깊이 느꼈다고 한다. 이 시점에서 데레사는 “그때까지 생활은 나 자신의 것이었으나, 그 후부터의 생활은 내 안에 계시는 예수의 생활이었다.”고 고백을 하게 된다.
데레사 성녀는 안으로는 영적 신비를 체험하면서 동시에 밖으로는 가르멜회 개혁을 위해 노력했다. 엔카르나시온 수도원장이 되면서 성녀는 스페인 전 지역을 다니면서 일생 동안 수도원을 개혁하고 17개의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이때 영적 서적의 불후의 명작인 '완덕의 길'과 '영혼의 성'을 저술하였다. 마침내 성녀의 개혁 노력은 빛을 보기 시작해서 각처에 있는 여자 수도원은 물론 남자 수도원까지 큰 자극을 주었다. 이는 데레사 성녀가 온전히 하느님과 일치되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하느님께서 기꺼이 신비스러운 일이 그녀에게 일어나도록 허락해주었다. 그런데 이러한 데레사 성녀의 신비 생활은 아름다운 꽃길이 아니라 가시덤불의 길이었다.
성녀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하신 주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면서 살았다. 고행, 겸손, 희생 등은 그녀가 평소에 지닌 십자가였다. 데레사는 그런 십자가를 열애했다. 이는 “주님! 당신을 위해 고통을 받겠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차라리 죽겠습니다”라고 자신의 심경을 늘 하느님 앞에서 고백했다.
데레사 성녀는 수도원 개혁을 강행군하다가 1582년 9월 2일 병을 얻어서 더 이상 이동을 못하고 살라망카에서 20Km 떨어진 알바 데 또르메스 가르멜회 수녀원에서 10월 4일 사랑하는 하느님을 뵈러 영원한 길을 떠났다. 임종이 임박하자 그녀는 주님과 영원한 일치를 할 기회가 왔음을 즐겨 기뻐하며, “주님! 저는 거룩한 교회의 딸입니다!”를 외치면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