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바동가 성모 기적지
622년 사우디아라비아 메디나에서 시작한 무슬림은 거침없이 중동과 아프리카를 향해서 확장하더니 8세기 초에는 유럽 대륙인 스페인까지 밀려 들어왔다. 스페인 사람들은 이슬람군에 밀려 험한 산악지대로 피난을 가는데, 그중 한 장소가 코바동가였다. 코바동가는 스페인 북부 아스투리아스 주에 있는 마을로 1877년에서 1901년 사이에 건설된 산타마리아 바실리카 대성전이 있다. 이 성당은 오랫동안 내려오는 주민들에게 전해져온 코바동가 성모님의 기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는데, 하늘을 찌를 듯한 뾰족한 양식이 특징이며 동정 성모를 특별히 공경하는 성당이다.
코바동가에서 시작되는 성모님의 이야기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전설인지 구분하기가 힘들다. 확실한 것은 스페인의 이슬람과의 전쟁과 영토 회복을 통한 정체성을 상징하며 스페인 국가 의식이 깊숙이 깔려 있다는 점이다. 코바동가 마을은 높이 솟은 피코 데 에우로파산(유럽의 봉우리) 안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예전부터 천혜의 요새였다. 국가적 영웅이자 그리스도교를 열심히 믿었던 펠라요 왕이 이슬람 군대를 쳐부수었다고 전해지는 장소를 방문하기 위해서, 오래 전부터 관광객과 순례자들이 이 마을을 찾아왔다고 전해진다.
역사적으로 8세기에서 15세기 사이에 이베리아반도에서는 이슬람 정복자들과 기독교 세력 간에 여러 차례에 걸쳐서 전쟁이 이어져 왔다. 초기에는 발달한 문명을 바탕으로 이슬람이 우위를 차지하였지만, 절치부심하던 기독교 세력은 마침내 최초의 승리를 거두었는데, 이 전투가 바로 코바동가 전투로 훗날 ‘레콩키스타’의 시작이었다. 즉 국토 회복 전쟁으로 711년 아랍 세력이 이베리아반도를 정복한 이후 기독교가 스페인 영토를 되찾은 사건의 시작점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아랍의 침략은 서고트 왕국 정복으로 시작으로 713년경에는 이베리아반도 대부분이 아랍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한없이 밀리던 스페인은 펠라요가 고트족을 중심으로 저항 세력을 형성했고, 그는 아스투리아 산 근처에 동고트족과 훨씬 남쪽에 이슬람 근거지에서 도망쳐 온 이들을 모아 군대를 결성하면서 전쟁을 준비하였다.
718년에서 715년 사이에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초기에는 이슬람 군대가 파죽지세로 밀려왔고 페라요의 군대가 패배를 거듭해서 산속에 숨어들었다. 이를 추적하던 이슬람 군대가 아스투리아 산으로 진입하려고 기병대를 동원하자 펠라요는 간절하게 성모님께 기도했고 성모님의 도우심으로 비가 내려 진흙탕이 되어 공격하던 이슬람의 기병대가 머뭇거리자 산의 좁은 길과 동굴에 매복하고 있다가 공격해서 이슬람의 기병대를 물리쳤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아스투리아 왕국은 이슬람의 위협으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날 수 있었다.
오늘날의 많은 순례객들은 펠라요가 성모님께 기도해서 용기를 얻었고, 그가 죽어서는 무덤으로 사용했다는 동굴과 8세기 당시에 건립된 성당, 그리고 19세기에 성모님께 봉헌된 ‘누에스트라 세뇨라 데 라스 바탈라스’ 대성당을 방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