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고사의 필라르 성모 대성당과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 대성당
사라고사는 바르셀로나에서 서쪽 250Km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로, 도심 한가운데로 에브로강이 흐르고 있다. 비옥한 평야를 갖고 있기에 예로부터 상업 군사의 요충지였다. 본래는 이베리아족의 도시였으나, 로마를 받던 시절에 군사적인 가치를 인정받아서 군사도시로 건설되었다. 그 후 이슬람의 지배를 받아 오다가 에스파냐 통일 때까지는 아라곤 왕국의 수도로 번성하였다. 사라고사는 나폴레옹 침략해왔을 때 끝까지 저항한 것으로 유명하다.
사라고사의 시내 중심에는 '팔라르 성모 대성당'이 있다. 성당의 외형은 화려한 타일로 붙인 11개의 둥근 지붕이 유명하다. 필라르는 스페인어로 기둥이라는 뜻인데, 예수님 승천 후 40년경(40년 1월 2일 밤) 신앙을 전하러 온 사도 야고보와 제자들이 좌절하고 있을 때 성모님께서 대리석 기둥 위에 나타나셔서 그곳에 성당을 지으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이 성당에서 유명한 것은 성모님의 기둥이라고 불리우는 대리석 기둥과 천장인데, 이 도시 출신의 세계적인 화가인 고야의 천장화는 화려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시기에 미군의 폭격이 있었지만 성모님의 도우심으로 폭탄이 불발이 되어 성전을 온전하게 보전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대성전 벽에는 실제로 성전에 떨어졌던 불발탄 2개가 전시되어 있다.
로욜라는 이냐시오 성인이 태어나고 자랐던 고향으로 지금은 예수회의 모원이 자리 잡고 있다. 영주의 아들로 태어난 이냐시오는 서른 살이 될 때까지는 세속적 쾌락을 추구하는 등 남들과 같이 노는 것을 좋아했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이냐시오는 스페인과 프랑스의 전쟁 시기에 형과 함께 기사로 전쟁에 참여하였지만 크게 다치고 목숨만 간신히 건진다. 이냐시오는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혈기 왕성한 그였지만 꼼짝없이 침대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이냐시오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책을 읽게 되는데 그 책을 통해 그동안 자신이 세속적으로 추구했던 쾌락과 명예가 모두 껍데기임을 알게 된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도 달라지는 법이다. 이냐시오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화려한 갑옷과 옷을 모두 내려놓고 초라한 옷 한 벌만 걸친 채 몬세랏의 동굴에서 기도하는 삶을 살아간다. 이냐시오는 과거 쾌락과 명예만 추구했던 세속적인 삶을 참회하면서 10개월간 고난의 시간을 통해서 명상의 시간을 보낸다. 이때 구상되고 집필하여 시작한 것이 바로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이다. 그리고 동굴에서 나와서는 30살의 늦은 나이에 신학교에 입학해서 46살에 사제가 된다.
사제 이냐시오는 이후 20여 년간 빈민들을 구제하는 등 본격적으로 사목을 해나간다. 이냐시오 성인의 가장 큰 업적은 성 베드로 파브로,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와 함께 ‘예수회’를 창설한 것이다. 이냐시오는 이 예수회를 통해, 당시 루터로 인해서 분열되던 교회를 다시 정화하고 교황권을 확립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특히 교회의 변화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교육이라고 확신해서 많은 학교를 세우게 된다. 교육은 지식을 쌓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새로운 인생관, 새로운 종교관, 새로운 세계관을 확장을 위해서 필요했다. 이냐시오 성인이 창립한 ‘예수회’는 선교에도 관심을 갖게 되는데, 아시아, 신대륙인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헌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