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과 성적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4-10-18 04:40 조회수 : 105
지각과 성적
오늘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글을 읽었다. 한 대학생이 중간고사를 위해 새벽까지 공부하다가 늦잠을 자서 20분을 지각했고, 교수가 입실을 거부하는 바람에 시험을 보지 못해서 성적을 망쳤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그동안 정성껏 학점을 관리했는데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을 엉망이 되었다고 하면서 휴학을 해서 성적을 리셋할까?를 고민하고 있다고 글로 마무리했다. 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함도 있을 것이라는 의견과 시험장의 엄숙한 분위기와 공정을 위해서는 교수가 한 행동이 맞다는 의견도 비등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지각에 민감하다. 인터넷을 조금만 살펴보면 ‘5분 지각한 학생의 최후’, ‘상습 지각하는 남친 대처법’, ‘올해도 어김없이 나오는 수능날 지각생들’, ‘세 번 지각했다고 회사에서 잘림’ 등등의 지각으로 인한 이야기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프랑스에서 회사를 다니는데 지각 안 하는 사람은 나뿐이다.’과 같은 글도 있다. 과거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는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고 지각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코리안 타임’이라는 말까지 있었는데, 지금은 지각이 사회적으로 부끄러운 문화가 되었으니 격세지감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생이나 직장인들이 지각이라는 말에 민감한 것은 학생부 평가나 기업의 인사고과에서 성실성에 의문을 갖게 되고 이로 인해서 경쟁이 심한 한국사회에서는 결정적인 마이너스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10대부터 50대까지 조직생활을 하는 시기에는 시간 관리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학생이 애써 관리해 온 학점이 한 순간의 실수로 물거품이 될 것은 조바심에서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쓴 것은 인지상정으로 봐주고 싶다. 하지만 또 다른 면인 성적을 공정하게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는 교수의 입장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만약 늦게 입실한 학생이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면 다른 학생들이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그럴 경우에 교수는 졸지에 공정하지 못하다는 낙인이 찍힐 수도 있다.
나는 이쯤에서 법률과 도덕률의 차이를 생각해 보았다. 지각과 입실 불가에 대해 어떤 강제적으로 지켜져야 문제를 법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관습으로 내려온 규칙을 무시한다면 이 또한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 규칙이 무너지고 모든 것이 자유라는 명분하에 허용된다면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근본이 흔들린다. 분명한 것은 법과 규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어떤 것이 더 중요한지는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이다. 교수와 학생의 입장에서는 같은 사건이지만 정반대의 입장으로 갈릴 것이다. 어떤 것이 진정으로 옳은 것인지 솔로몬의 지혜를 청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