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에는 당시에는 당연시 되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주 고약한 법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황제와 국가적 우상들을 신으로 경배해야 하는 법이 있었다. 그래서 이를 거부한 그리스도인들은 무신론자라는 죄명으로 여러 가지 고통을 받았다. 그리고 심할 경우에는 목숨까지도 빼앗아갔다. 165년에 순교한 유스티노 성인은 자신의 편지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실상 우리는 이교인들의 우상을 믿지 않으므로 그런 점에서 우리가 무신론자라는 것은 옳은 말이다.”
오늘날에는 정신병자가 아니면 아무리 권력자라 해도 자신을 신격화하는 일은 별로 없다. 그러나 권력의 절대화의 위험은 과거 어느 때보다 널리 퍼져 있다. 특히 전통적으로 상하 관계만 지나치게 강조되고 횡적 관계가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되어 온 우리의 전통적 의식 구조 속에서 그런 위험은 한층 더 심각하다. 하느님만을 유일한 신으로 고백하는 일은, 소위 권좌에 앉아 남을 지배하는 사람들이 그 힘을 남용하고 자신들을 위해서 사용하는 절대적인 성격을 띠고 사용한다면 이를 단호히 거부하는 용기를 갖을 때 합리화가 된다. ‘하느님은 권세 있는 자를 그 자리에서 내치시는 분이시다.’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만을 인정하는 일은 절대 진리로 결코 변하지 않는다. 하느님만이 유일한 신이심을 고백함으로써, 우선 ‘하느님께서 보장해 주시는 개개인의 절대적 존엄성이 살아나고’ 다음으로는 정치나 종교 등 제 분야에 있어서의 모든 인간적 구조가 절대화하려는 경향에 제동을 걸게 된다. 이는 권력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독일의 히틀러가 자신의 권력을 절대시하기 시작했을 때, 그리스도인들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더라면 나찌즘과 제 2 차 세계대전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교회는 절대 권력자인 히틀러가 두려워서 그들과 적당히 타협을 했던 우를 범했고, 이는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오점이 되고 말았다. 그로 인해서 교회는 신뢰를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당시의 권력자들인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과 타협하지 않고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셨다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그로 인해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셨지만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그 분이 옳았다는 것을 온 세상에 증명하셨다.
“나는 하느님만을 유일한 신으로 믿는다.” 이 말을 입으로만 외치고 삶 안에서는 실천하지 못하고 외면한다면 그 결과는 너무나도 엄청난 것이 될 것이다. 그 위험성은 우리에게도 계속 존재한다. 권력에 대해서 절대라는 말이 적용될 수 있다면 그것은 ‘절대적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는 역사의 교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