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호의를 강요당하는 세상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4-09-19 03:25 조회수 : 86

호의를 강요당하는 세상


연휴나 월요일에는 한가지 고민을 갖고 있는데, "무엇을 먹을까?" 라는 고민이 바로 그것이다. 냉장고 안에 있는 음식을 차려 먹기도 하지만 먹는 것을 즐기는 성격이 아니니 그냥 굶기도 한다. 성당의 직원들도 휴일이나 월요일에는 철저하게 휴식을 보장해야 한다는 생각이 나의 철학이다. 그래서 그런 날은 아무래도 먹는 것이 부실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음식을 시켜 먹는 시스템이 잘 되어 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음식을 배달해서 먹은 적이 없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고, 시켜먹는 음식보다는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는 것이 더 좋아서다. 


요즘 사람들은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 횟수가 엄청나다. 그러다 보니 문제들이 언론에 등장하곤 한다. 그 기본적인 이유 중의 하나가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라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배어있기 때문이다. 최근 커뮤니티나 SNS에서 잊을만하면 ‘주문 빌런’들의 이야기가 올라온다. 1만 원짜리 음식을 시켜 먹으면서 2만 원 수준의 질이나 양을 요구한다거나 가게에서 판촉을 위해 얼마씩 끼워 주는 공짜 서비스를 한도 이상으로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흔하게 발생하고 있다. 물론 경제가 어렵고 사람의 성격상 손해 보기 싫어하는 것이 본성이라고 하지만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본인이 아프다’, ‘돈이 없다’, ‘어린아이가 있다’ 등을 이유로 막무가내로 동정을 강요하는 사람도 있고, ‘나한테 공짜 서비스 안 해 주면 벌점 테러하겠다! 장사 말아먹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기어라’라는 형태의 협박을 하는 예도 있다. 이쯤 되면 단지 선의를 요구하는 것을 넘어 남의 약점을 잡고 갑질을 시전하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쌓이면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가령 ‘길 가다가 누군가 갑자기 쓰러지면 절대 도와주지 말아라. 기껏 도와주었다가 가해자 취급을 당해서 치료비 내놓으라고 협박을 당하거나 고소당할 수 있다. 그냥 못 본 체하는 게 최선이다’라는 식의 이야기가 생활의 지침이나 지혜인 양 널리 퍼지고 있다.

 

선의를 받았으면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이다. 그러나 오히려 ‘물에 빠진 사람 건져 주니 보따리까지 내놓으라 한다’ 식의 상황이 벌어지고, 가상공간을 통해서 널리 전파되다 보니 그만큼 사람들이 부정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측은지심이 있다.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진 것을 보았으면 앞뒤 재지 않고 달려가서 구해야 한다. 인간의 본성은 본래 선한 것이니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말아라.” 예전에 맹자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으로 그 뜻을 곰곰이 되새겨 보면서 살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