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오늘 많은 사제들이 길게는 5년 짧게는 2년동안 사목을 하던 정든 현장을 떠나 새로운 사목지로 이동하는 날이다. 새로운 곳을 향한다는 것은 희망보다는 그동안 익숙했던 삶을 떠나서 낯선 곳을 향한다는 다소 두여움을 누구나 갖고 있다. 많은 사제들이 주님의 도우심으로 하루 빨리 정착해서 훌륭한 사목자가 되시길 기원해보면서 성서 한 구절을 인용해본다.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요한 12,28)
예수님의 기도는 사제들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끔 한다. 나는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왔고 또 앞으로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그렇게 못 살고 있지만, 앞으로는 하느님께 영광을 온전히 드리며 살 수 있을까?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며 사는 일이 정말로 가능할까?
아마도 대다수의 사제들은 이러한 질문에 당당하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사제들도 인간이기에 아담과 하와의 잘못된 행동으로 생긴 원죄로 인해서 우리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일보다는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하면서 살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왔던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갈 우리의 모습을 예상해 볼 때 분명한 것이 있다. 우리에게는 스스로의 힘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는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어리석게도 하느님의 영광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영광이 더 중요하고, 다수의 영광보다는 개인적인 영광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왔다. 그리고 나 아닌 다른 이들에게 영광을 빼앗기는 것은 치욕과 부끄러운 일이라고 여겨왔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우월한 존재가 되는 것은 숙명이고 더욱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언제나 최고만을 추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는데 본래의 목적을 잊어버리면 하느님 앞에서는 못난이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느님께 봉사하고 영광을 드리려고 마음을 먹으면 하느님의 뜻을 수용하고 그분께 자신을 봉헌하게 된다. 우리가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자신을 십자가의 제물로 내놓으셨다.
나에게 서품을 주신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존경하고 우러러 보지만 정작 자신은 스스로를 바보라고 부르셨다. 시간이 지난 이제야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