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거절하면서 삽시다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4-08-26 04:28 조회수 : 77
때로는 거절하면서 삽시다
어느 공동체든지 얌체족이 있기 마련이다. 돈 빌려 갈 때는 손이 발이 되도록 부탁하다가 빌려 간 후에는 오리발 내미는 사람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얌체족이 버젓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주변에 지나치게 착하고 마음이 여린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공통점은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어쩌다 거절하더라도 힘들어하면서 거절한 것을 후회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얌체족은 사람들의 죄책감을 부추겨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특화가 되어 있다. 그들은 집요하고 체면을 중요시하지 않아서 행여 거절당해도 신경을 쓰지 않거나, 상대방에게 말이나 행동으로 죄책감을 만들어서 결국은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얻어내는 탁월한 능력이 있기에 평범한 사람들이 당해내기가 쉽지 않다.
면담을 하다 보면 이런 얌체족 때문에 손해를 보아서 속병을 앓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마음에 내키지 않지만 상대방이 청하는 부탁이나 청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것도 일종의 병이다. 이러한 증상을 우스개소리로 ‘거절 불능증’ 혹은 ‘미안 과잉증’이라고 한다. 이런 증세는 쓸데없는 죄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일종의 죄책감은 필요하다. 양심의 한 지류인 죄책감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인간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감정이다. 분명한 것은 죄책감이 없으면 내적 성장도 없고, 인생에서의 성장도 없게 된다.
그런데 밭에 밀과 가라지가 같이 자라듯이 우리 마음에도 건강한 죄의식과 병적인 죄의식이 함께 자라고 있는게 문제이다. 하지만 건전한 삶을 살려면 이 두 가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병적인 죄의식은 자신이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도 죄를 저지른 듯한 죄의식을 갖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생각만으로도 죄를 저질렀다고 자신을 자책한다. 이렇게 마음이 죄의식으로 젖게 되면 늘 다른 사람으로부터 휘둘림을 당하는 삶을 살아갈 확률이 높아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죄의식은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 마음을 어질게 먹고 선행을 베풀면서 살려고 하는 사람, 인생을 좀 더 신앙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지나치게 선하고 정이 많다보면 본의 아니게 심리적 균형을 잃어서 윤리적으로 바른 삶인데도 마치도 자신이 냉정한 사람이나 이기적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생겨서 괴로워하고 결국은 본인이 상처받으면서 살게 된다. 병적인 죄의식을 가진 사람은 우선 자신이 가진 쓸데없는 양심의 가책일랑 집어던져야 한다. 그리고 감당이 안되면서까지 너무 착하게 살려고 애쓰지 말고, 나한테 고약하게 구는 사람과 거리를 두면서 살아갈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