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삶도 현명함이 필요하다
며칠 전에 신자분이 “친절하면 사람을 만만하게 보는 것 같아요.”라면서 속상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래서 그분을 바라보면서 “요즘은 친절한 사람이 되는 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닙니다.”라고 위로를 해주었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그런 경우가 부지기수다. 필요할 때는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하던 사람이 어려움이 해결되면 언제 그랬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면 인간에 대한 자괴감을 느낀다. 그에 못지않은 경우가 처음 한 두 번은 진심으로 고마워하던 사람도 나중에는 호의를 당연한 권리로 생각하고 더 무리한 부탁을 해온다. 항상 부탁을 들어주다가 사정이 생겨서 어렵다고 말하면, 그동안 고마웠다는 말보다는 사람이 변했다고 폄하한다. 열 번 친절을 베풀다가도 한 번의 부탁을 거절하면 나쁜 사람이 되는 세상, 그만큼 사회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회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증거라서 씁쓸하다.
우리가 자랄 때는 가장 많이 듣던 말이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도와주어야 한다’와 같은 말을 들으면서 살아왔다. 그러다보니 단호함은 매정한 것이라는 인식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니 성인되어도 여전히 ‘사마리아 콤플렉스’에 사로 잡혀서 살고있다.
우리 사회의 모습을 냉정한 눈으로 보면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고 다른쪽은 그 도움을 받는 관계가 의외로 많이 있다.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착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자신과 상대에게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가 있다. 착한 사람이 되는 것과 호구가 되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선의’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긍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무조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때와 장소를 구분하지 않으면 자칫 바보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타인을 이용하고 저버리는 이기심 가득한 사회에선 착한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 남을 위하느라 정작 자신이나 가족을 챙기지 못하고, 무리하게 도움을 주려다 오히려 손해를 보기도 한다. 때로는 단호하게 나와 가족을 먼저 챙기는 것이 순리이고 그래야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갖지 않게 된다.
억지로 상대방을 기분좋게 해주겠다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꾸며대지 말자. 상대방을 배려한다고 선의의 거짓말을 남발하는 것도 상대방에게 실례가 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타인이 나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도록 지혜를 갖추었으면 한다. 이제는 나의 선의가 남이 아닌 나와 가족에게 우선적으로 향했으면 한다. 그렇다고 이기적으로 살라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나의 선의가 우습게 여겨지지 않도록 때와 장소를 가리는 것이 진짜 선의를 베푸는 것이요, 현명한 삶을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