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든의 '놀람' 교향곡과 아마데우스 4중주단
음악을 들으면서 새벽을 시작하다가 만약 음악이 없었다면 세상은 어땠을까?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아마도 사람들은 정서적으로 메마르고 각박해져서 잦은 다툼이 일어났을 거라는 추측을 해본다. 음악은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불과 일곱 개 반음까지 쳐도 겨우 열두 개의 음표로 어떻게 그리도 끊임없이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이다. 마치 바둑의 가로 세로 각각 열아홉 줄에 불과한 공간 안에서 무한한 경우의 수가 나와서 마치 작은 우주를 이루는 것처럼, 아무리 정석을 외우고 익혀도 끊임없이 솟아나는 기보 때문에 사람들이 바둑에 빠져드는 것처럼 음악도 도저히 어찌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무궁무진한 표현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심취하게 만든다.
음악과 함께하는 삶은 언제나 마음을 넉넉하고 따뜻하게 만든다. 요즘은 음악 그 자체보다는 장비가 다양해지다보니 오디오 투자에 신경을 더 쓰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된 오디오를 구성하는데 일억을 훌쩍 넘어가는 경우가 다 반사이다. 하지만 음악 그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조그마한 라디오나 아니면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로 만으로도 얼마든지 즐겁고 행복해질 수 있다.
며칠 동안 아침햇살이 쨍하고 쏟아지고 있지만 요즘은 장마 시즌이기에 비가 다시 내릴 것이다. 비오는 날에 듣는 하이든 교향곡 제 94번 ‘놀람’은 나에게는 최고의 음악이다. 경쾌하고 낙천적인 느낌이 깔려서 그런지 하이든의 음악은 이런 날씨에는 늘 최고이고 결코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같은 곡이라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느낌이나 해석이 다르고 연주하는 사람들의 기법에 따라 다가오는 감동이 다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주가는 아마데우스 현악 4중주단이다. 이들의 연주 기법은 거칠게 표현해야 된다는 부분도 매끈하게 연주한다. 음식으로 비유를 하자면 칼칼한 맛보다는 순하고 부드러운 음식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비가오는 날에 마음이 평안해지고 싶을 때는 아마데우스 4중주단의 연주를 즐겨 듣는다. 그런데 내가 이 연주팀을 좋아하는 더 큰 이유는 다른 데에 있다.
영국에서 1947년에 조직된 현악 4중단으로 제1바이올린의 노버트 브레이닌, 제2바이올린의 지크문트 니셀, 비올라의 피터 시드로프, 첼로의 마틴 로브에트 이렇게 네 사람이 40년 동안 한 차례의 멤버 교체 없이 유지해오다가 비올라를 연주하던 시드로프가 죽자 인원 보충을 하지않고 곧바로 해체하였다. 다른 공연팀은 수시로 멤버를 교체하거나 보충을 해서 그 이름을 유지하는 데 반해, 그들은 처음부터 최고의 전성기를 거처 말년까지를 늘 함께 했다. 그리고 팀원 중에 한 사람이 죽자, 이젠 본인들이 공연했던 예전의 음악을 다시는 할 수 없다는 말을 남기고는 팀을 과감하게 해체했다. 청중의 입장에서 아쉽지만 그들의 결정을 존중해주고는 싶다. 그들이 연주하는 하이든의 음악도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만 물러설 때를 아는 그들의 행보가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작은 이해 관계에 따라서 수시로 변하는 우리들에게 던져주는 감동은 음악 이상의 것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