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마음과 도안요셉 신부
어제 오후에 도안신부가 집으로 돌아갔다. 원래는 계속 있으려 했으나 항암제의 부작용으로 조금만 걸으면 발바닥에 열이 나서 걷는게 불편해 보여서 집으로 가라고 권했다. 보내면서 가장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하니 삼겹살이 먹고 싶다고 해서 함께 먹고, 백화점에가서 쿠션이 두툼한 운동화를 사주었다. 한 켤레 더 사주고 싶었는데 극구사양을 하는 모습이 마음이 더 짠하다. 그러면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차를 타면서 오히려 나를 위로해 준다. “제 걱정하지 마시고 신부님 건강을 잘 챙기세요”라고 하면서 웃는데 콧등이 시큰해진다.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불안한 마음으로 조바심을 내면서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걱정이나 불안한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예전보단 훨씬 강도나 빈도가 줄었다. 강론을 통해서 신자들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말라고 하면서도 나 자신이 그렇지 못했으니 부끄러웠다. 내가 계획한 사목의 방향이 옳은지, 사목회를 비롯한 신자들이 따라줄지 등과 내 개인적인 고민등 지금 생각해보면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지례짐작으로 하면서 살았다.
지금도 내가 하고 있는 사목에 대해서 걱정을 한다. 그 원인을 생각해보면 나를 괴롭게 만든 것은 타인의 존재였다. 내 주변에 있는 동료사제들은 모두가 자신에게 닥친 삶의 고비를 의연하고 능숙하게 헤쳐 나가는듯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타인과 비교하느라 내 스스로를 조급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사제가 예상치 못한 말로 나를 다독여 주면서 “지금 네가 느끼는 불안감은 잘 살아가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모든 사람이 너 같지는 않아. 그들은 너처럼 열심히 살지 않거든. 난 동창 중에서 네가 최고의 사목자라고 생각한다.”
그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야”라며 이야기를 마무리했지만, 나는 그날 작은 위로를 받았다. 남들보다 뒤처져서가 아니라 다만 잘 살아가고 싶었을 뿐이라는 안도감에 불안을 조금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게 다 괜찮아진 것은 아니었다. 어제도 오늘도 여전히 불안의 연속이다.
하지만 당장의 건강 때문에 힘들어하고 속으로 고민하고 있는 도안사제만 하겠는가?를 생각해보니 나의 고민이나 불안감을 차라리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을 잘 꾸려나가고 싶은 마음에 불안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도 있지만 걱정한다고 당장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 불안은 오늘도 내일을 잘 살아갈 원동력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