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이다
인천공항을 출발한지 채 4시간이 되기도 전에 하노이 공항에 도착을 했다. 비행기를 타면 할 일이 별로 없어서 대부분의 시간은 눈을 감고 있는게 평소의 모습인데, 이번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손에 묵주를 잡고 있었다. 잠도 전혀오지 않고 그렇다고 여행의 들뜬 기분이 든 것은 더더욱 아니라 감정이 말로 표현하기 애매한 상태로 시간을 보냈다.
공항에 내려 입국수속을 마치고 게이트를 빠져나오니 베트남 특유의 후끈한 날씨와 도안요셉 신부님이 나를 반겨준다. 다낭에서 4달 전에 보았을 때보다 얼굴이 눈에 띄게 부어 있었다. 말없이 안아주고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 항암치료 때문에 얼굴이 부었냐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렇다고 한다. 사제로 살면서 수많은 환자들을 봐왔고 그들을 위해 기도를 해왔는데, 이번에 뭔가 느낌이 다르다. 아마도 부모가 아직 아플 때가 안된 자식을 바라보는 심경이 아닐까?하는 느낌이다.
택시를 불러서 타려고 하는데 배가 고프다고 하면서 맛있는 것 먹자고 한다. 그래서 뭐가 먹고 싶냐고 하니 신부님이 사주시는 것은 다 맛있을 것 같다고 하면서 의사가 항암치료 기간 중에는 체력이 약해지니 가리지말고 많이 먹어두라고 말씀하셨다는 이야기를 먼저 끄낸다. 지난번 다낭에서 이것저것 많이 먹길래 아픈 사람이 너무 많이 먹는게 아니냐는 나의 말이 신경이 쓰였던 것 같아서 그렇게 말했을 거라고 추측해본다. 하기야 한참 먹을 젊은 나이에 대장암이라는 몸쓸병에 걸렸으니 먹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겠는가? 나도 먹는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당뇨병을 앓고 있기에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먹지 말라고 하면 더 먹고 싶은게 사람의 심리가 아니던가...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항암치료비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약 12번의 치료를 하는데 3천만 동이 든다고 한다. 우리 돈으로 150만원 정도라서 내심 안심하고 있었는데, 12번에 그 돈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치료할 때 150만원 정도가 들어간다고 해서 잠시 뇌가 정지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약 1800만원이나 되는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것이다. 내가 엄청난 돈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신부의 한 달 봉급이 40만원 정도 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도안신부가 속한 랑선교구는 우리의 안동교구나 제주교구처럼 아주작다. 그래서 가난한 교구가 도안신부에게 도움을 주고 있지 못하다.
그 사정을 알기에 나도 나름 적지 않은 돈을 치료비로 가져갔지만 손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돈을 더 가져오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물론 서울에 돌아가서 송금을 시켜주면 되지만 내가 미안함 마음이 드는 것은 도안요셉 신부의 마음을 진심을 다해서 헤아려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람이 아플 때는 정말이지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이 든다. 누구의 손이든 가리지 않고 잡고 싶어하고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에게 고마움을 갖고 또 기대고 싶어한다.
그러면서 내가 도안신부를 위해서 할 수 있는것에 대해서 최선을 다했는가?를 반성해 본다. 그리고 마음을 새롭게 먹어본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