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광고와 경고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4-06-17 19:34 조회수 : 90

광고와 경고


어제는 영종도에 사는 친구집에 다녀왔다. 일 년이면 두세 달은 외국에서 여행을 하면서 지내는 팔자가 좋은 친구다. 자연스럽게 외국 이야기를 하다가 투르키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나도 투르키를 몇 차례 다녀왔는데 그 친구가 투르키에서 살때가 좋았다면서 추억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러고보니 투르키는 우리와 상당히 친숙한 국가이다. 나는 성모님이 말년을 지내셨다고 전해지는 에페소를 좋아하는데, 번화가가 시장통에 가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재미있는 광고가 있다. 지금은 한쪽 벽만 남아있는 셀수스 도서관이 접해 있는 도로바닥에 동그라미와 하트, 그리고 사람의 발자국 모양의 음각이 새겨져 있는데, 이 작품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광고판이라고 전해진다.

 

우리 정서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도서관 바로 옆에 창녀촌이 있었는데, 사랑을 원하거든 돈을 가지고 오라는 뜻임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의 발 모양을 새겨 놓은 내력이 매우 흥미스럽다. 아무리 돈도 좋지만, 그 발자국에 발을 대 봐서 그보다 작은 사람, 즉 미성년자는 출입을 금지하라 는 뜻이란다. 

2천여 년 훨씬 전부터 성매매가 이루어진 사실도 놀랍거니와 하필이면 학문에 전념해야 할 사람들을 상대로 도서관 앞에서 매춘이 이루어진 것도 역설적이다. 이태리 폼페이를 방문했을 때도 비슷한 컨셉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던 광고를 보았다. 어쩌면 인류 최초의 광고는 매춘에 관한 것이라는 설명이 설득이 간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나름 명쾌하고도 재치있는 상업성과 절제된 도덕성의 강조가 절묘하게 공존함을 엿볼 수 있다. 안사면 절대로 안될 것처럼 거의 협박에 가까운 광고의 홍수 속에서 살아온 현대인들에게는 2천여 년 전의 그 함축적인 메시지와 애교있는 광고와 경고문은 나름 추억을 준다.  


몇년 전에 지방에 당일치기로 다녀올 일이 있어서 속도감과 안락함을 자랑한다는 KTX를 처음으로 타보았다. 고속으로 달려도 편안함을 주는 기술 수준에 감탄했지만 나름 아쉬운 점도 있었다. 수시로 나오는 경고성 안내방송이 그것이었다. '휴대폰 사용을 자제해 주십시오' '옆 사람과 대화를 하실 때는 작은 소리로 해주십시오' '어린이의 안전을 위해 꼭  손을 잡고 다니시오'. 수시로 흘러나오는 안내방송은 잠시 쉬면서 고속철의 편안함을 즐기려는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철도청의 입장에서는 안전이나 공중질서를 홍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객의 입장에서 본다면 영혼없이 되풀이하는 방송보다는 어차피 각 정거장에 도착을 알리는 안내방송을 해야 할 때 한꺼번에 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가졌다. 그리고 안내방송이 경고성의 사무적인 말투보다는 재치있고 간결하면서도 양해와 협조를 구하는 형식을 취한다면 오히려 승객들에게는 전해지는 효과는 더 클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은 우리 주변에서도 일어난다. 우리들도 상대방에 대한 불편한 이야기를 할때 인상을 쓰거나 윽박지르는 듯한 경고성 말을 하는 것보다는 부드러우면서도 부탁하는 형식을 취한다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표현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생활화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의식하고 노력한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의 오늘 하루는 비엔나 커피의 생크림처럼 부드러움과 달콤함으로 가득하면서 여유가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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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오로가 전교를 하던 에페소에 있는 셀수스 도서관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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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수스 도서관 앞에 있는 시장으로 인근에 발자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