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어제는 '예수 성심 대축일'이었고, 오늘은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이다. 예수님의 마음과 성모님의 마음을 묵상해 보았다. 사제로 살면서 가장 좋았던 것을 뽑으라면 성지순례를 자주 다닌 것을 택하고 싶다. 기억해보면 휴가의 대부분을 성지순례로 대체를 했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얻는 이득이 여러가지가 있다. 일단 어디로 가고 무엇을 먹을까?를 고민을 할 필요가 전혀없다. 일정에 짜여진 대로 다니기만 하면 될뿐만 아니라 성지이니 평소에 소홀히 했던 기도를 자의반 타의반으로 열심히 할수 있다. 그래서 성지순례는 나에게 있어서는 피정과 같은 의미를 갖고있다. 순례를 하다보면 같은 장소를 여러번 방문을 하게되지만 그럼에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그런 장소 중에 하나가 ‘투르키’다.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어서 문화가 발달했고 옛문화가 비교적 잘 보존된 지역이며, 교회사에서도 상당한 비중이 있는 곳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도 바오로의 주요 선교지였고 곳곳에 교회의 역사가 숨쉬고 있는 소중한 장소이다. 431년에는 에페소에서 성모님에 관한 중요한 교리를 확정한 공의회가 열렸다. 지금은 무슬림 사원으로 개조가 되어버린 소피아 성당은 6세기에 건설된 것으로 베드로 성당 건립 이전까지 최고의 성당이었으며, 1054년에는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분열된 현장이기도 하다.
터키에서 가장 좋아하는 순례장소로는 성모님께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셨다고 전해오는 에페소에 있는 성모 경당이 으뜸이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사랑하던 제자인 요한에게 성모 마리아를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7)라고 하셨고, 요한은 예수님 승천 이후에 성모님과 함께 에페소로 이주해서 살았다고 전해진다. 에페소 공의회에 의하면 사도 요한이 산 위에 성모님을 위해서 집을 지어드렸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집의 위치가 잊혀지고 폐허가 되었다.
1878년 '케서린 에메리히'라는 독일 수녀님이 꿈속에서 계시받은 내용을 <성모 마리아의 생애>라는 책으로 발간했는데, 책에 성모 마리아의 집 위치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1891년 책을 근거로 현장을 탐사해서 성모님이 사시던 집터를 발견했는데 위치와 모습이 정확하게 일치했다. 1961년 교황 요한 23세는 '성모 마리아의 집터'인에 이곳을 성지로 공식 선포했다.
함께 순례를 했던 한 교우가 주변 분들께 드릴 선물로 자그마한 성모상을 50개나 샀다. 이것을 본 내가 그 분께 물었다. “자매님, 그것 무겁지 않으세요?” 그런데 그분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신부님! 성모님인데 무겁긴 왜 무거워요?”
지금도 가끔씩 그 분의 표정과 말씀이 생각난다. 성모님이니까 무겁지 않다는 교우의 말 속에서 성모님이 우리에게 주신 '티 없이 깨끗하신 사랑'도 생각해보게 된다. 선물을 나눠줄 교우들에 대한 사랑 앞에서는 50개나 되는 성모상의 무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계시는 '티 없이 깨끗하신 사랑' 또한 크기나 무게를 감히 어떻게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오늘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을 지내면서 성모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피정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