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나 쯤이야
어떤 마을에 그동안 전통적으로 지내던 축제가 다가오자 여러가지를 준비로 마을 전체가 바빴다. 변화를 원하던 주민들은 해마다 주민들이 마시는 포도주를 이번에는 공동으로 구입하는 대신에 각자 집에서 마련한 포도주를, 축제가 벌어질 광장 한 구석에 커다란 포도주통에 자발적으로 붓기로 했다. 사람들의 적극적인 호응에 힘입어 순식간에 포도주가 가득차게 되었다.
축제가 시작되었고, 축제에 참석한 마을 사람들은 한껏 기분을 내기위해서 포도주를 잔에 따라 축배를 올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통에서 나온 것은 맹물이 잔뜩 섞인 맛없는 포도주 뿐이었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했지만 이유는 너무나도 뻔했다. 마을 사람들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 하나쯤 포도주에 물을 섞으면 어떠랴 하는 마음으로 물을 탄 포도주를 통에 부었던 것이다.
이와같은 일들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과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일에는 마음이 너그럽다가도 막상 자기의 이익이 걸린 문제를 만나면 갑자기 마음이 옹색해지고 자신이 이익을 보는 쪽으로 해결하려거나 만약 목적대로 쉽게 안되면 이런 저런 변명을 통해서 자신은 빠져나가려고 노력한다. 이처럼 남의 일에는 둔감하고 자신의 이익에는 민감해지는 모습을 너무나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진짜 문제이면서 결정적인 것은 '나 하나쯤이야' 이라는 마음이다.
지속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큰 문제가 된 부동산이나 복지가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다가도 세금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결론이 나면 국가의 정책 방향을 비난하고 정치인들은 자신의 표의 득실에 따라서 소신까지도 쉽게 변경한다. 서로 나는 손해를 볼 수 없으며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절대 부당하다고 하면서 어떻게 해서라도 한 푼이라도 덜내거나 안내면서 남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쉽게 볼수 있다. 이런 가운데서 어떻게 우리는 사회 정의를 찾을 수 있을까?
우스게 소리로 정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것이 증세라고 할 정도이니 정말이지 ‘Noblesse oblige’는 우리 사회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것인가 하는 회의감마저 든다. 진정으로 존중받는 사회는 철저하게 자신의 책임을 누가보든 안보든 상관없이 행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오늘 날 우리사회에서 벌어지는 많은 문제들중에 적지않은 부분들이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에서 시작이 된다. 우리 모두가 나부터 솔선수범하는 마음을 갖지 않을 때 통을 채우게 되는 것은 포도주가 아니라 맹물이 될 것이다. 혹시 우리 사회와 교회가 잔치를 벌이자고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서로 앞다투어서 맹물을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