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언젠가 한 번은 이별해야 한다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4-05-22 04:44 조회수 : 72

언젠가 한 번은 이별해야 한다


월요일에는 더 건강하게 잘 살아보겠다고 병원에 가서 종합검진을 받았고, 어제는 명동성당에서 신학생 시절에 본당신부님이셨던 분과 작별을 고하기 위한 장례미사를 공동으로 집전하고 왔다. 그러고보니 우리의 삶 안에는 죽음과 생명이 늘 혼재해있다. 사람들은 살면서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갖는다. 만남과 이별은 성격이 전혀 다른것 같지만 살펴보면 의외로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이별 뒤에는 새로운 만남이 있기에 평상시에는 우리는 이별이라는 말에 그리 목을 매지는 않는다. 


이별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간혹 지겨운 인연을 끝내기 위한 이별을 반기기를 하지만 그리 흔한 경우는 아니다. 우리의 삶 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피하고 싶은 이별은 죽음을 통한 이별이다. 그것은 새로운 만남을 위한 이별도 아니고 의지가 반영된 이별도 아니다. 결코 원하지 않지만 기어이 찾아오기에 누구에게나 두렵고 때로는 피하고 싶은 이별이다. 죽음을 통해 이별하고 나면 또 다른 만남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죽음은 이별의 종착점이다. 

사제로 살아가면 수 많은 죽음을 봐왔다. 가끔씩은 죽음 그 자체보다도 그를 통한 이별이 더 두려울 때가 있다. 죽음을 통한 이별은 아무리 보고 싶어도 만날 수 없고 아무리 찾아가고 싶어도 찾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죽고나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보지 못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고 나면 내가 그를 보고 싶을 때 그를 보지 못한다. 그래서 죽음을 통한 이별은 생각하면 할수록 두렵고 가슴이 저리고 아득해진다. 


개인적으로 죽음하면 생각나는 것이 아버지의 죽음이다. 5년 전에 하늘나라로 아버지를 먼저 보내시고 지금은 여든 중반을 넘기신 어머님이 요양원에 계신다. 이제는 당신의 건강을 걱정할 정도로 쇠약해지는게 눈에 보여서 마음이 착잡하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가끔 통화를 하면 혼자사는 자식의 건강을 먼저 걱정해주신다. 그럴때마다 건강하셨을 때 나의 구박을 받으면서도 반찬을 만들어서 보내주셨던 기억이 나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그래서 어머니를 뵐때마다 더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가 하늘나라에 가셨다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니와 이별을 하게 된다면 다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물론 어머니가 하늘나라에 못가신다는 이야기 아니다. 누구보다도 하느님의 뜻대로 사실려고 노력하신 분이다. 이별의 슬픈 생각이 들 때마다 ‘천년을 함께 있어도 한 번은 이별해야 한다’는 글귀를 떠올리게 된다.  


내 주변에는 뜻하지 않게 어린 자녀를 불의의 사고로 떠나보낸 부모님들이 있다. 사랑하는 자녀들과 이별의 말 한마디도 못하고 보내야했던 가슴 아픈 사람들을 바라볼 때면 죽음이 주는 이별과 그리움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보게된다. 그리고 서로 사랑할 때는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것 또한  우리들의 일방적인 바램이라는 것도 알게된다. 그래서 사랑을 하면서 사는것은 오늘 하는 것이지 내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더욱 든다. 내 옆에 있는 소중한 존재들이 영원히 함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던져버리고 오늘 하루의 만남에서 영원을 찾도록 노력해보는 '가정의 달'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