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 그 이후
몇 년 전에 연천지역에는 집중호우로 인해서 홍수피해가 있었다. 내가 머물고 있던 학교는 산중턱에 있어서 잘 몰랐는데, 뉴스를 보니 대통령도 현장에 왔을 정도로 피해가 심각했다. 비가 그치고 난 후에도 여전히 강물은 불어나 있었고 평소에 보이던 포플라 나무가 끄트머니만 물밖에 나와 있고 그 밑으로 있어야 할 우사가 보이지 않았다. 순간 ‘노아의 홍수’가 생각이 났다.
며칠 후 물이 빠지고 난 후에 우연히 지나갔었는데, 이번에는 수마가 할퀴고 간 상처를 민낯으로 볼 수 있었다. 그대로 주저앉은 지붕과 무너진 담장이며 군데군데 흩어진 가축들의 주검들과 쓰레기 더미들이 뒤범벅으로 뒹굴고 있었다. ‘폐허’라는 낱말은 이럴 때 쓰는가보다 라고 생각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지나가면서 보니 축사며 살림집들이 제법 정리도 되고 물에 잠겨있던 벼들과 파란 밭작물들이 제법 자라고 있었다. 홍수로 피해를 보았지만 그래도 땅이 더 좋아져서 작물들이 잘 자라고 있다고 생각을 했었다. 역시 ‘파괴는 건설의 어머니’라는 말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그 파괴의 현장에서 좌절하지 않고 새로이 일구어낸 주인의 집념과 땀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 보면, 물이란 참 신기한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홍수가 발생하면 온통 생명을 다 쓸어버리기도 하지만 가뭄으로 인해서 물이 없으면 생명이 살아 갈 수 없으니 이리저리 생각해봐도 참 신기한 존재이다.
어제는 예수님의 세례축일이었다.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요르단 강에서 물로 세례를 받았던 사건을 기억하며 동시에 내 자신들의 세례 성사도 함께 기억해본다. 내일이면 사목위원 몇 분과 함께 군종교구청을 방문한다. 지난 성탄전야 미사에 천여 명의 신자들이 참석하셨고 많은 액수의 구유예물이 들어왔다. 신자분들의 정성어린 구유예물을 사목위원들과 상의를 한 끝에 군종교구에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나는 군인신분이던 1983년 12월 24일에 광주 상무대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래서 늘 군종교구에 대해서 약간의 부채의식을 갖고 있다. 나를 새롭게 태어나게 해준 군종교구에게 내 돈은 아니지만 뜻 깊은 돈을 전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기쁘다. 나에게 세례의 동기가 되었던 초코파이를 많은 병사들에게 다시 되돌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군종교구에서의 우연한 기회에 받은 세례는 나의 삶을 통째로 바꾸어 놓았다. 만약 군대에서 세례를 받지 않았으면 나는 지금의 삶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군 생활이라는 홍수를 겪고 물로 세례를 통해서 거듭 태어 날 수 있었다. 세례 이후의 나의 삶은 자신보다는 남에게 생명을 가져다주는 물의 삶을 아낌없이 살았다고 자부한다. 물론 하느님이 인정해주셔야 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