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면서 살아가자
밤이 깊고 어둠이 깊어질수록 별의 진가는 드러난다. 까만 천 위에 보석을 잔뜩 쏟아 부은 듯 영롱하게 빛나는 별은 암흑의 두려움도 잊게 할 만큼 매력적이다.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밤과 같은 어려움이 찾아온다. 꿈은 그때마다 어두움을 극복하게 하는 별이 된다. 그리고 그 별은 희망의 길로 안내한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삶에 대한 꿈을 갖고 살아간다. 어린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물어보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꿈을 말한다. 그런 아이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꿈이 얼마나 허망한지 깨닫기 시작하고 자신의 현실에 맞는 꿈을 찾기 시작한다. 너무 현실과 타협하다보면, 그 꿈이 초라해져서 그저 하루하루 즐겁게 사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늘의 별을 딸 수는 없다. 그러나 슬기로운 사람은 그 별을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게 불가능하거나 지루하고 힘들다는 걸 깨닫게 되면 다시는 꿈을 꾸려고 시도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후회하게 될 것이다. 현실을 찾다보면 편안함을 얻은 수는 있지만 대신 평안함을 잃을 것이다. 편안함은 돈으로 얻을 수 있지만 평안함은 마음으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눈앞의 이익만 추구한다면 자신의 꿈과 이상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꿈을 돈으로 살 수는 없다. 꿈은 시간과 공을 들여 지금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를 이끌어가는 동력이기에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그래서 꿈은 그 꾼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별이고 특권이며 자산이다.
꿈을 버리거나 잃고 사는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이다. 오히려 꿈을 품었다간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손가락질 당하기도 한다. 때로는 꿈을 품는다는 것 자체가 무모하다는 것과 같은 취급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건 연어가 후손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죽음을 무릅쓰고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까닭을 헤아리지 못하는 어리석음일 뿐이다.
일찌감치 꿈을 놓아버린 어른이 한창 희망과 꿈을 가져야하는 아이에게 꿈을 심어줄 수는 없다. 그러면서도 내 아이만큼은 나보다 더 행복하게 꿈을 실현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면 어불성설이다. 내가 꿈을 다시 담을 수 있어야 아이도 꿈을 담을 수 있다. 그걸 위해서라도 어른들이 다시 꿈을 되찾아 새롭게 시작했으면 좋겠다. 아니, 새로운 시작이 꼭 아니어도 지금의 삶을 보다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꿈은 갖아야 한다.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 학생들에게도 꼭 말해주고 싶다. 학생들이 오랫동안 꿈의 별을 간직하길, 그리고 적어도 나보다는 더 오래오래 꿈꾸며 살기를 기도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