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오늘은 '어버이 날'이다. 비록 세상의 모든 어버이들 가슴에 카네이션을 드리지는 못하지만, 그동안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녀들에게 보여주신 헌신적인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면서 오늘 하루도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기원해본다.
책장을 기웃거리다 아주 오래된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저자가 직접 싸인을 해서 나에게 증정을 해준 책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소설가 최인호 씨가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쓴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는 소설이다. 그는 암투병을 하면서 지난 날을 돌아다보니 크신 어머니의 사랑에 보답하지 못하고 불효했던 지난날을 뉘우치며 글을 썼다고 하면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았던 순간이 생각났다. 작가는 책을 통해 한때 넉넉치 못한 생활 속에서 자주 어머니와 반목했던 불효자였음을 고백하며 자신의 세련되지 못한 사랑과 치매 걸린 어머니를 짐스러워했던 일을 참회하며 고해 성사를 보듯이 풀어놓았다. 그 중에 한 대목을 옮겨본다.
엄마, 하늘나라에도 꽃들이 만발해요? 그건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 그곳에서도 엄마는 우리 자식들 걱정을 하고 계실 거란 거예요. 엄마는 우리 투정은 무엇이건 들어주는 신문고였고, 필요한 모든 것을 다 풀어주는 해결사였고, 힘 빠지면 기운 내게 해 주는 알부민 주사였고 종교였는데, 이젠 투정 부릴 곳도, 아프다고 주사 맞을 데도 없네요. 열이 난 머리에 엄마 손이 놓여지면 시원해지고, 아픈배도 스르르 나았죠.
그 손으로 조몰락거리면 온갖 음식들이 척척 만들어지고 엄마 손이 가는 구석구석마다 윤이 났어요. 참 신기해요. 세탁기도, 전기밥솥도, 학교 급식도 없던 시절, 그 많은 아이들 밥 먹이고, 빳빳하게 풀먹인 교복 입히고, 도시락을 몇 개씩 싸서 키우면서도 누룽지도 튀겨 놓으시고, 헌 털실 풀어 스웨터도 짜 주셨잖아요. 그러다가 결국은 비단실 자아낸 번데기처럼 자신의 모든 걸 쏟아내고 가셨지요.
그런데 엄마, 엄마는 왜 그렇게 바보같이 사셨어요? 왜 만날 “난 괜찮다.”란 말만 하셨어요? 왜 항상 맛있는 것, 좋은 것은 자식들에게만 내놓으셨어요? 치매에 걸려 당신 자신조차 알아보지 못하시면서 “엄마, 어때?”라고 물으면 무조건 “난 괜찮다.”라고 자동 응답기처럼 답하셨던 엄마, 먹을 것을 드리면 먼저 우리 입에 넣어주던 엄마.
자식들에게 힘들다고, 속상하다고 좀 화도 내시고 푸념도 하시지 그러셨어요. 친구들이랑 훌쩍 여행도 다니시고, 예쁜 옷도 사 입으시지 왜 그렇게 스스로를 감옥에 갇힌 모범수처럼 사셨어요? 물론 엄마가 혀 깨물고 참으신 덕분에 자식들 무사히 잘 자라 좋은 학교도 나오고, 취직도 하고, 결혼도 했지만 그건 엄마의 인생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그 똑똑한 자식들 성공해서, 바빠서 엄마 볼 시간도 없었잖아요.
다가오는 어버이 날, 그래도 살아 계실 땐 그날 만이라도 카네이션 달아 드리며 회개하는 척이라도 했는데, 이제 어떡하죠? 하지만 엄마가 안 계셔서 제일 속상한 건 좋은 일이 생길 때 자랑할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엄마는 자식들의 성취를 온 몸과 마음으로 축하해 주고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하셨잖아요. 엄마의 그 기쁜 표정을 보고 싶어서라도 열심히 살려 했는데...... 아무리 늙고 병들고 주책스럽다 해도 엄마, 단 하루 만이라도 엄마 품 안에 안겨서 온갖 고자질 다하고 펑펑 울고 싶어요. 그래도 아시죠? 얼마나 제가 엄마를 사랑하는지, 그리고 엄마가 제 엄마여서 너무 고마웠고, 너무 행복했어요. 엄마, 사랑해요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