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와 묵주
오늘 이야기는 신부가 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본당 신부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재구성해 본 것이다.
1940년경의 무렵이었다. 이 무렵의 1전은 지금의 1000원보다 화폐의 실효적 가치가 높았다고 한다. 당시의 1전이면 눈깔사탕 한 알이 너무 커서 입에 넣으면 어린 입이 찟어질 정도였다고 하니 분명히 작은 돈은 아니었다. 이때 포목점을 하는 돈 많은 노인 한 분이 계셨다. 이웃에게는 아주 인색한 사람으로 평이 나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그의 상점에 오는 거지 한 사람에게는 남 다른 자비를 베풀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오는 중년의 거지에게 한 번도 거르지않고 더도 덜도 않고 동전 1전을 주었던 것이다.
그날도 거지가 찾아와서 얼굴을 내밀자, 노인은 1전을 주려고 주머니를 뒤졌으나 잔돈이 없었다. “잔돈이 없으니 내일 보게나”하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자 거지가 하는 말이 “잔돈은 제게 있으니 큰 돈이라도 주십시오. 거슬러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노인은 잠시 거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는 주머니에서 10전짜리를 내어 주었다. 거지는 10전짜리를 받고는 1전짜리 아홉 개를 건네주었다. 그 후 거지는 몸이 아파서 사흘을 쉰 후 노인의 집에 찾아가서 손을 내밀었다. 그 노인은 4전을 주었다.
“웬걸 이렇게 많이 주십니까?”
“여보게, 사흘 동안 안 왔으니 그 몫까지 쳐서 주는 걸세.” 그는 돈을 받고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왜 안 가나?”
“어르신께 할 말이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실은 요즘 몸이 아주 안 좋습니다.”
“그래서?”
“말씀 드리기에 뻔뻔스럽습니다만 월급제로 하시는 것이 어떨까 해서요.”
“월급제라니?”
“매일같이 찾아오는 것도 뭐하니 한 달치를 한꺼번에 주시면 어떻겠느냐 하는 말씀입니다.”
노인은 그 말을 듣고 크게 웃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30전을 주었던 것이다. 이렇게해서 노인과 거지의 관계는 오랜 세월 계속되었다.
노인도 몸이 점점 쇠약해져서 죽음을 앞두고 자식들에게 한 개의 상자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 상자 속에는 짧은 유서와 묵주가 들어있었다.
“나를 찾아오던 거지에게 1년에 한번씩 3원65전을 주고 이 묵주를 건네 줄 것을 꼭 지켜다오.”
어느 날 거지가 노인인 죽은 줄 모르고 포목점에 찾아왔다. 포목점을 이어받은 아들로부터 할어버지의 유언을 들었고 아들이 준 돈과 묵주를 건네받은 거지는 한 참을 서 있다가 묵주만 받고 그 다음부터는 그 집에 발을 끊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