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어머니와 작은 새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4-04-30 03:51 조회수 : 102

어머니와 작은 새


남들은 한창 바쁜 월요일이 나에게는 휴일이다. 새벽에 미사를 마치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오전내내 성경 강의와 신심 미사 때에 강의할 성모님에 대해서 정리를 하다보니 점심시간이 되어서 근처에 있는 중식당에서 간단한 식사를 먹으려는 찰라에 일흔이 훌쩍 넘어 보이는 노인이 어머니를 휠체어에 모시고 식당에 들어오려고 하는데 턱이 있어서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주저없이 문을 열고 휠체어를 밀어드렸다. 아마도 요양원에서 계신 어머니가 생각이 나서 본능적으로 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당신도 나이가 들어서 힘드실텐데 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시는 모습을 보면서,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가 생각나서 한동안 식사를 못했다. 어렵게 식사를 마치고 나는 성당 성모상 앞에서 두 손을 모아 우러러보면서 중얼거렸다.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이 세 마디의 중얼거림은 내가 성모님과 어머니께 드린 기도이자 사랑의 노래다. 나에게는 세 분의 어머니가 계신다. 첫 번째 나를 하느님께 이끌어 주고 계시는 성모님이요, 두 번째 어머니는 아들을 사제로 보내고, 불편한 몸을 이끄시고 새벽부터 묵주알을 굴리고 계실 육신의 어머니요, 세 번째는 어머니는 부족한 내가 사제로 잘 살도록 늘 뒤에서 기도해 주고 용기를 내라고 항상 사랑을 부어주시고 계시는 교우들이다. 이 세 분의 어머니들 덕분에 나는 오늘 하루도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살 수 있다. 나에게 어머니는 희망이요 사랑이며 용기다. 때론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치는 것도 사실이지만 언제나 어머니는 희망을 주고 사랑을 주며 쓰러진 나를 다시 일으켜 주시면서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고 계신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고 당당하게 말하곤 했지만, 나는 게으름을 피웠고 편한 길을 좋아했으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목자가 되기보다는 목자를 위해 목숨 바쳐 주는 양이 되기를 은근히 요구한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강론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라”, “십자가를 기꺼이 지는 사람이 되라.”고 말하면서 정작 나는 작은 십자가 앞에서도 망설였던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또 신자들에게 이웃을 위해서 도움을 주는 것을 주저하지 마라, 기도하라,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라고 주문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온갖 명분을 붙여가면서 실천하지 않았던 적이 또 얼마나 많았던가.


이렇게 괴로운 반성을 하면서 나는 세 어머니를 기억해 본다. 사제란 자기의 새끼를 위하여 자기 심장까지 파먹게 한다는 펠리컨의 사랑을 본받아야 한다고 수없이 생각했고, 그것은 본인의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이요 교우들의 기도로 완성된다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다. 

언젠가 날다가 지쳐서 사제관의 창틀에서 비를 흠뻑 맞고 떨고 있는 작은 새를 본 적이 있다. 비를 맞아서 떨고 있는 작은 새를 바라보면서, 사제는 하느님의 은혜와 교우들의 기도를 먹고 사는 작은 새임을 느꼈다. 분명한 것은 교우들의 기도가 없다면 사제는 창틀에서 떨고 있는 작은 새에 불과하다. 그래서 교우들이 부족한 사제인 나를 위해서 세 번째 어머니가 기꺼이 되어 주시길 희망해 보면서 마음 속으로 읍조려본다.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