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
지난 주부터 수요일마다 성경강의를 다시 시작했다. 직장을 마치거나 집안 일을 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저녁 8시에 와서 한시간 반동안 강의를 듣는다는 것이 보통의 열정을 갖고는 쉬운일이 결코 아니다. 그래서 열정적으로 강의를 마치고 사제관에 올라와서 하루를 정리하다가 초기 교회에 있었던 일이 생각이 났다.
중세시대에 독일의 주교가 교구청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을 방문했다. 그곳은 워낙 외진 곳이고 오랫동안 사제가 없어서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신자들은 주교님께 사제를 파견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사제의 숫자가 워낙 부족해서 당장 파견할 처지가 못 되었다. 주교는 고민을 한 끝에 열정적인 신앙심을 갖고 있던 젊은 농부를 선택해서 단기간에 교육을 시킨 후에 사제로 서품을 주어서 파견을 보냈다.
그러나 주교는 영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제대로 교육도 시키지 못하고 간신히 미사와 기본적인 성사만을 가르쳤기 때문이었다. 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 교육기간이 필요한데 너무 성급하게 자격도 없는 사람에게 사제직분을 준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주교는 그 사제가 어떻게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지 보려고 몸소 가서 미사를 집전하는 것을 몰래 지켜보았다. 숨어서 지켜보던 주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지금까지 그토록 경건하고 진지하게 미사를 드리는 사제를 한번도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강론을 하는 사제의 눈은 별처럼 빛났고 열정과 사랑으로 토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신자들 뿐만 아니라 주교님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미사가 끝나자 주교는 제대 앞으로 나가 그 사제에게 무릎을 꿇고는 강복을 청하였다. 사제는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을 서품시켜주신 교구장임을 알게 되자 깜짝 놀라면서 주교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주교님께서 저에게 강복을 주셔야지요. 어떻게 제가 교구장님께 강복을 할 수 있겠습니까?”
주교님은 다시 무릎을 꿇으시면서 겸손하게 말씀하셨다.
“아니요. 신부가 나를 강복해 주시오. 나는 그대처럼 열정과 사랑을 가슴에 지니고 미사를 드리는 사제를 본적이 없소.”
이 말을 들은 사제는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주교님, 열정과 사랑 없는데 어떻게 미사를 드릴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정말이지 사제인 내가 들어보아도 기막힌 대화의 장면이다. 이 이야기를 처음 대했을 때 나는 호되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미사는 사랑의 잔치이며 하느님의 초대 잔치이기에 뜨거운 열정과 연민, 사랑의 마음을 지니고 미사를 봉헌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대로 실천하기는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최소한의 교육만을 받았지만 그 어떤 사제들보다도 열정적인 미사를 드렸고 그로 인해서 참 권위가 섰고 그 권위 앞에 주교님 또한 무릎을 꿇고 강복을 청했다는 장면은 인상이 깊었다.
살면서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다. 나도 성경을 강의하면서 지식적인 면보다는 열정적인 신앙의 자세를 강조한다. 아이러닉하게도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제일 먼저 알아본 것은 악령이었다. 그러고보면 성경공부를 통해서 예수님을 안다는 지식적인 사실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처럼 사랑을 열정적으로 실천하면서 사는 일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