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미사와 영대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4-04-05 04:56 조회수 : 82

미사와 영대


아주 오래전에 휴가를 가면서 미사 가방을 챙겨서 갔었다. 비록 휴가를 갔지만 미사를 봉헌해야 할 것 같아서 준비했는데, 영대가 없었다. 신학교에서 배우길 미사를 할 때는 반드시 영대를 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생각이 나서 고민 끝에 미사를 안 하고 복음을 묵상만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영대가 뭐라고 영대가 미사를 해주는 것도 아닌데 영대 없이 미사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 참으로 어리석은 판단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났다.

천주교회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계기로 지난날의 조직과 형식, 법과 제도 등에 치우쳤던 점을 반성하고 말보다는 행동이, 형식보다는 내용이, 제도와 조직보다는 말씀과 은총이 더 중요함을 천명하고 있지만 아직도 영대 하나 때문에 미사를 못 드렸던 나처럼 조직과 형식, 법과 제도의 무거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여전하다. 오늘날 교회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법과 제도인가, 말씀과 은총인가? 교회와 그 조직원들이 제도와 형식의 이름으로 은총과 내용에 제동을 걸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식인종 출신의 아프리카인이 영국의 유명한 대학으로 유학하러 갔다. 그는 어느 추장의 아들로 우수한 성적으로 공부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십년 후 백인 동창생이 아프리카를 여행하다가 그를 만났다. 영국에서 유학까지 마친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동족들로부터 존경받는 추장이 되어 있었다. 다른 동족과는 달리 양복을 입고 매우 세련된 모습이었다. 그런데 식사 시간에 보니 추장인 친구는 다른 식인종들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고기를 먹는 것이었다. 백인 동창생은 깜짝 놀라면서 “아니 영국에서 명문대학까지 나온 사람이 어떻게 사람의 고기를 먹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추장은 한 손을 높이 들어 보이면서 “아, 그래도 나는 이렇게 포크로 먹고 있지 않습니까? 보십시오! 다른 이들은 손으로 먹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배운 사람과 배우지 못한 사람의 차이지요.”라고 말했다 한다. 

우스갯소리이지만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이 있다. 이 추장은 공부했으나 본질은 접하지 못하고 껍질만 보고 왔던 것이다. 공부를 통해서 마음과 생각이 변화되어야 하는데 풀로 만든 옷이 양복으로 변하고, 손가락으로 먹던 음식을 포크로 먹듯이 껍데기와 형식만 바꾼 것은 진정한 변화라 할 수 없다.


인간을 영육의 존재라 말하고, 우주의 원리에도 음양의 양면성이 있듯 구원의 원리에도 신과 인간, 은총과 자연, 말씀과 형식, 성령과 제도 등의 양면성이 존재한다. 이 양면성은 반드시 조화와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 너무 감정적인 것에 홀려 오류를 범하는 것이 개신교라면 아프리카 추장처럼 손가락으로 먹던 음식을 포크로 먹듯 껍데기와 형식만 변화된 것이 천주교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교회는 교계제도와 정통 신학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제도와 형식을 넘어선 살아 있는 모습을 유지 발전시킬 있도록, 은총과 성령 안에서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것이다